국내 6대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담당자(CFO)들이 가장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은 환율과 자금흐름이다. 극도로 악화된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 경색과 급격한 환율의 움직임은 피할 수 없는 상황.
최고 경영자들은 환율 급변동으로 중장기 계획에 결정적인 차질이 빚어지는데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금흐름이 급속도로 경색돼 상황에 따라서는 자금조달 길이 아예 막혀버리는 경우까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그룹은 우선 원ㆍ달러 환율이 올해내 달러당 1,300원 내외까지 오르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금융위기가 진정되면 1,100원 전후에서 안정될 것이지만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려면 적어도 1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본격 확산되는 어려움 역시 올보다는 내년이 더욱 극명해져 수출이나 내수 모두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것이 주요 그룹들의 상황인식이다. 이에 따라 각 그룹마다 달러든 원화든 현금확보를 연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고있다.
주요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축소하거나 자산매각에 나선 것 역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들이다. 본지가 5일 국내 6대그룹 주요 계열사 CEOㆍCFO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기업들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비상경영체제 불가피하다
올보다 내년을 더 어둡게 보고 있는 주요 기업들은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가장 우선적인 대응은 리스크 관리. 자칫 안정적인 자금사정에도 불구하고 유동성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서경석 GS홀딩스 사장은“계열사별로 시장동향을 점검하며 경영환경 악화에 대비하고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 등 위기대응전략에 나섰다”고 말했다.
조남홍 기아차 사장은 “경영환경측면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피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회사 각 부문 및 기능별로 위험요소를 파악 중에 있다”고 말했다.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은 “위기대응은 우선 원가절감과 프로세스 혁신 등 근본적인 사업 경쟁력을 키우는데 있다”며 “신흥시장과 프리미엄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율 급변동에는 컨틴젠시 플랜
무엇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환율이다. 미국의 구제금융 조치에도 시장의 반응이 시원하지 않고 환율이 쉽사리 안정기조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대응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컨틴젠시 플랜’이다.
더구나 수출비중이 압도적인 주요 기업들은 리스크가 높은 환 헤지 보다는 달러화 결제대금을 다변화하는 등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부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현금 자산성 확보와 외환 보유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결제용 자금에 대해 탄력적으로 외환보유 규모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조사장은 “원ㆍ달러 환율이 1,300원대까지 급등할 수 있다”며 “수입업체들은 수입결제를 위해 달러화를 조기에 확보하고, 수출업체는 달러화 공급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고환율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 경영은 수익보다는 안정
주요 기업들의 내년 경영전략은 ‘수익보다는 안정’이다. 이미 본격화한 국제적인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 고부가가치화 등 전통적인 경영방침이외에 섣불리 나서지 않을 방침이다.
사실 상당수 기업들은 상황이 워낙 급격히 변하면서 본격적인 내년 계획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당장 대응이 급하고 몇 달 후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도현 LG전자 CFO는 “북미와 유럽 등 글로벌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에 대비한 비상경영체제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하지만 미래사업 준비관점의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정준 SK에너지 R&C사장은 “시기적으로 내년 경영계획을 정리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투자는 줄이고 돈 되는 것은 최대한 매각한다
주요 기업들은 계획 단계에 있던 해외 투자를 취소하거나 보유 해외자산을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금융시장을 통한 자본 조달이 어렵게 된데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쓸 데는 최대한 줄이고 현금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유동성 확보 전략인 것이다.
기업들의 현금 확보노력은 처절할 정도다. 굴지기업의 경우 최근 보험사에 보험을 들며 해당 보험사에 담보대출을 요청했다. 골프장 회원값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주요 기업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시장에 회원권을 내놓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기아차 조사장은 “기존 자금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며 자금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희 포스코 기획재무부문 부사장은 “적극적인 외화조달을 검토중”이라며 “해외에서 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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