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0개월 동안 주공임대아파트에 살았다. 딱 두 군데, 수첩 만한 크기로 벽지가 훼손되었다. 관리소 직원들은 사설탐정처럼 민첩하게 종이를 떼어냈다. 한 사람은 찢어진 벽지 아래 '거실 벽지 훼손'이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댔고, 또 한 사람은 카메라 셔터를 찰칵찰칵 눌러댔다. 보상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찢어진 부위에 표 나지 않게 도배를 해 놓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거실 전체를 다 도배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수명을 다한 형광등 한 개도 사다 놓고 가라고 했다. 이삿날, 보증금 가운데 일백만원을 떼였다. 도배값으로 일단 백만원을 차감당한 거였다.
임대아파트 주인인 주택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세상에 어떤 집주인이, 이사 나가는 세입자에게 도배값을 물린대요?" 힘없는 서민이 어찌 주택공사 직원 말발을 감당하리요. 울분만 쌓였다. 이사 후 무려 47일만에 도배값 30여만원을 떼인 금액이 환불되었다.
임대아파트 월세 계약서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고의에 의한, 중대한 시설물 훼손인 경우에 입주자는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문구가 씌어있기는 했다.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애 키우다 보면 불가피한 벽지 훼손, 그게 그렇게, 고의에 의한, 중대한 시설물 훼손인가? 주공임대 살았던 게 죄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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