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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둑 토 "조국은 아직 분쟁중" 노벨평화상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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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둑 토 "조국은 아직 분쟁중" 노벨평화상 거부

입력
2008.10.0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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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선정해온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인물은 지금까지 프랑스의 문학가겸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와 베트남 정치가 레 둑 토 등 2명 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AP 통신 온라인판은 6~13일 있을 노벨상 각 부문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5일 노벨상에 얽힌 갖가지 흥미진진한 역사적 기록들을 소개했다.

샤르트르는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뽑혔지만 “모든 공적인 훈장과 명예를 거부하는 것이 내 원칙”이라며 상 받기를 완강히 거절했다. 다만 당시엔 평생의 라이벌이던 알베르트 카뮈가 자신보다 앞서 1958년 문학상을 받은 데 자존심이 상해 수상을 거부했다는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레 둑 토는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함께 베트남 전쟁을 종결하고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1974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레 둑 토는“파리평화협정을 맺었다 해도 조국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며 상을 물리쳤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때에 수상을 못한 사람들은 많다.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평화상 수상자로 독일의 반체제인사인 평화주의자 카를 폰 오시츠키가 선정된 데 격노, 이후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시켰다.

때문에 화학상의 리하르트 쿤과 어돌프 부테난트, 의학상의 게르하르트 도마크 등 3명의 독일인 학자가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들은 나치 독일이 패망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에야 상을 받았다.

명작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됐으나 옛 소련 정부의 방해로 상을 받지 못한 한을 품고 1960년 사망했다.

연령제한이 없는 노벨상의 최고령 수상자는 지난해 90세 때 경제학상을 받은 레오니드 허위츠로 그는 미국의 ‘매커니즘 디자인 이론’창시자로 통한다. 최연소자는 1925년 25세때 아버지 헨리 브래그와 함께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로렌스 브래그였다.

노벨상을 받고도 남을 공적을 쌓았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한 가장 아까운 인물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로 나타났다. 20세기 비폭력운동의 상징인 간디는 1948년 1월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다섯 차례나 후보에 추천됐으나 끝내 인연을 맺지 못했다.

평화상을 선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간디가 상을 받지 못하고 타계한 것을 오랫동안 애석하게 생각하다가 1989년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수상자로 뽑으면서 부분적으로 간디의 업적을 재차 인정한 결과라는 수상 설명을 덧붙였다.

노벨상은 전체 수상자 가운데 여성이 5%에도 못미쳐 사실상 남성의 독무대였다. 104명의 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은 지난해 도리스 레싱을 비롯해 11명에 불과했다. 평화상은 개인 자격 수상자 95명 가운데 12명이었고 물리학상의 경우 여성 수상자는 1903년 프랑스 마리 퀴리와 1963년 미국의 마리아 메이어 단 두 명에 그쳤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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