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작가 송현숙(56)씨는 그리움을 그린다. 그는 스무살에 간호보조원으로 독일에 건너가 4년간 낯선 땅의 병원에서 일했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의 풍경을 그리다가 함부르크 미대에 들어가 화가가 됐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송씨의 '단숨에 그은 한 획(Breath and Brushstrokes)' 전에서는 둥근 항아리, 늘어뜨린 삼베와 모시, 말뚝 기둥 등 아스라한 고향의 기억들을 만날 수 있다. '7획' '1획 위의 5획' 등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지극히 단순화된, 그러나 섬세한 기억들이다.
송씨는 서양 중세회화에 사용된 물감인 템페라와 도배할 때 풀을 바르는 한국의 풀비를 사용한다. 넓적한 풀비가 한 번 지나간 자리에, 불투명한 하얀 천의 까슬한 질감과 둥그스레한 항아리의 부피감이 살아난다. 1획짜리, 2획짜리 그림도 있다.
송씨는 "적은 획으로 그리는 게 더 어렵다. 힘과 속도와 각도를 모두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줄 타는 사람처럼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향수에 몸부림치며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낸 그림을 그렸지만, 1990년 이후로는 나를 진정시키고 더 단순화한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형상의 단순화를 통해 시린 기억을 많이 덜고 걸러낸 셈이죠."
바탕은 회색빛이 도는 연녹색이다. 그의 고향인 전남 담양의 대숲이 떠오른다. "빨강, 보라색도 해봤는데 잘 안 됐어요. 그냥 이 빛깔이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고향에 가서 보고 '아, 여기서 나온 색깔이었구나' 했지요." 전시는 26일까지. (02)720-1524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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