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 최대은행 씨티그룹은 지난해 11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큰 손실을 입었다. 누군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 이때 씨티를 구원해준 곳은 중동의 국부펀드들이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75억달러, 두 달 뒤 쿠웨이트의 쿠웨이트투자청(KIA)이 145억달러를 긴급 지원한 뒤에야 씨티는 진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끝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되고 말았지만, 사경을 헤매던 메릴린치에 긴급수혈을 해준 곳 역시 우리나라의 국부펀드 격인 한국투자공사(KIC)였다.
#2. 세계1위의 사모펀드(PEF)인 칼라일. 조지 부시 전대통령 등 거물 정치인들을 고문으로 두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기업사냥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지난 2004년 우리나라 한미은행인수로 벌어들인 돈은 약 6,000억원. KT&G LG화학 등 수만명의 근로자를 지닌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연간 순익과 맞먹는 금액이다. 2002년 185억달러(22조6,000억원)이던 칼라일의 자산규모는 지난해 520억달러까지 늘어났다.
우리가 생각하는 금융회사라고 하면 은행 보험 증권사 정도가 전부. 미국식으로 치면, 투자은행(IB)정도를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곳은 이런 전통의 금융회사가 아니다. 돈 냄새가 나는 것이라면 동물적 후각을 갖고 움직이는 곳, 그래서 소수인원으로도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펀드'들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요즘 사모펀드, 헤지펀드, 그리고 국부펀드까지 '뉴 플레이어(New Player)'들의 부상이 눈부시다.
물론 이들 뉴 플레이어의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전세계 금융자산에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국부펀드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6조달러 가량)이다.
하지만 지난 7년간 헤지펀드(20%) 사모펀드(14%) 국부펀드(15%) 등의 성장세는 뮤추얼(공모)펀드(10%)와 연기금펀드(8%)를 압도하고 있다. 언제든 전세가 뒤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강점은 전략적 차별화다. 소수의 거액 자산가와 몇몇 기관의 투자로 운영되는 사모펀드는 M&A가 주전공이다. 벤처나 중소기업에 대한 '바이아웃'(인수한 기업 정상화 후 재매각)으로 실력을 쌓은 사모펀드들은 2006년부터는 공동인수(클럽 딜) 방식으로 세계 M&A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칼라일 외에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 SC제일은행의 대주주였던 뉴브리지캐피탈이 모두 사모펀드다. 한때 KT&G를 먹으려 했던 칼 아이칸도 그렇다.
미국자동차의 자존심 크라이슬러(서버러스), 미국 최대 전력업체인 TXU(KKR), 힐튼호텔(블랙스톤)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현재 사모펀드 손에 넘어간 상태다.
사모펀드와 태생은 같지만 보다 단기로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는 주로 파생상품에 천착하고 있다. 높은 레버리지(남의 돈을 빌려 수익을 추구하는 것)와 공매도(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를 이용해 하락장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 영국 주식 거래소 하루 거래량의 50%, 미국 부실채권 시장 거래량의 82%, 파생상품시장의 33%가 헤지펀드 차지다. JP모건AM, 골드만삭스AM 등이 대표주자다.
또 다른 뉴 플레이어 국부펀드, 특히 중국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국부펀드는 든든한 자금력(3조달러)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해결사 노릇을 하며 주도세력으로 떠올랐다. 모건스탠리는 전세계 국부펀드 규모가 2015년 12조달러, 2017년 17.5조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통적인 시장 참가자인 뮤추얼펀드도 일정비율 이상 공매도를 추가 하는 등 헤지펀드의 투자 전략을 따르고, 연기금 역시 해외 주식 및 채권 그리고 대체자산(부동산, 원자재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등 글로벌화, 복합화를 추구하고 있다.
노희영 한국증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뉴 플레이어의 등장은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고 금융 시장 주체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을 유도,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초라하다. 사모펀드는 2004년 말 도입했지만 이익을 실현한 경우는 거의 없다. 국부펀드는 2005년 7월 만들어졌지만 주로 채권, 주식으로 운용했고 그나마 첫 해외 투자였던 미국 메릴린치의 경우 최근 미국발 신용 경색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의 뉴 플레이어가 활약을 하기 위해선 먼저 자금력을 갖추고 신상품 개발, 위험관리, 네트워크 등 시장 기반도 튼튼히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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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외 국부펀드 현황
전세계 국부펀드의 모범처럼 여겨지는 싱가포르투자청(GIC)의 지난 20년간 투자수익률은 연평균 7.8%. 이는 아시아 외환위기, IT버블, 최근의 글로벌 신용위기까지 모두 견뎌낸 수치다.
20년전 100억달러를 투자했다면 지금은 약 416억달러가 된 셈인데 세계 3위의 투자규모(최대 3,300억달러)를 감안하면 싱가포르가 그동안 벌어들였을 이익은 실로 엄청나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출발부터 늦었다. 우여곡절끝에 어렵사리 2005년 출범했지만, 자금규모도 200억달러 남짓으로 수천억 달러가 예사인 유수 국부펀드들에 비하면 최하위권이다.
사실 KIC가 본격적 투자를 시작한 것은 올 들어서다. 올 초 20억달러를 들여 메릴린치 지분을 야심차게 사들였지만, 운 나쁘게도 글로벌 신용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때 반토막 위기까지 몰렸다 급히 일반주로 전환해 위기를 모면했지만 장기적인 수익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 이다.
실제 지난해 말~올 초 사이 공격적 투자에 나섰던 각국 국부펀드들도 요즘은 몸을 사리고 있다. 안정성을 우선해야 하는 국부펀드로서는 감당해야 할 위험이 최근 들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신 월가의 급매물들은 대신 일본, 중국 등의 민간 금융사들이 쓸어담는 중이다.
하지만 준비마저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중국투자공사(CIC)는 지난달 주식, 채권, 조사 분야 30여개 직책의 채용계획을 발표하며 '인재 사냥'에 나섰다.
갈 곳 잃은 월가 전문가들을 모아 향후 투자확대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GIC 고위관계자 역시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등 선진국 자산을 인수할 좋은 기회"라며 투자확대 의지를 드러냈다.
'위기는 곧 기회'임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범위와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KIC 진영욱 사장은 최근 "우리 펀드 규모에서 메릴린치에 10%를 투자하고 나니 다른 곳에는 투자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국부펀드가 이것보다는 커야 국제사회에서 얘기가 통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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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사모·헤지펀드 현황
멍석을 깔았지만 노는 사람이 없다.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을 빗댄 말이다. 2004년 말 시작한 PEF 시장이지만 펀드 자금 조성이나 투자 행위 모두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국내 사모펀드는 40여 개. 총 투자 여력은 8조5,000억원이다. 하지만 4조원은 이미 투자가 이뤄졌고 여윳돈은 4조원 정도다. 시장을 활기 차게 할 '큰 판 돈'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수출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대기업이 PEF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한 기관투자 관계자는 "국내 M&A 시장에서 PEF는 인수 자금을 대는 보조 역할을 하는 정도"라며 "쓸만한 인수 대상 기업을 찾고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역량이 없다"고 말한다.
PEF 활성화를 위해서는 M&A가 활발해야 하는데 경영권을 유달리 집착하는 한국의 기업 지배 구조 탓에 M&A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좋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PEF에 대한 제약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다. 빈기범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PEF는 수익을 위해 모든 방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투자자 보호를 최고로 여기는 공모펀드 위주의 자산운용법 안에 PEF를 억지로 집어 넣고 있고 자본시장통합법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규제가 아닌 육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면서 "투자의 의미와 성과를 잘 이해하는 투자자에게는 굳이 투자자 수나 투자 금액을 제한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내년 말 첫발을 내딛는 국내 헤지펀드는 '깔아놓은 멍석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와 시스템에서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는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선임연구위원은 "헤지펀드를 먼저 도입한 외국은 헤지펀드의 도산을 막고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만들기 위해 활발하게 논의 중"이라면서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헤지펀드의 성패는 펀드를 운용할 맨 파워에 달려 있는데 실력 있는 펀드 운용자를 기르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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