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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밤은 노래한다

입력
2008.10.0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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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지음/ 문학과 지성사 발행ㆍ348쪽ㆍ1만원

"그 시절의 진실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다. 지금은 이 세계에 객관주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도 든다" (212쪽)

소설가 김연수(38)씨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는 가슴 뜨거웠던 어떤 젊은이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 운명은 민족해방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숭고한 꿈을 품은 채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혁명에 투신했던 젊은이들이 종국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고 죽이게 되는 가혹한 운명이다.

작품의 배경은 일본제국주의와 동북아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격렬하게 대치했던 1930년대초의 동만주. 개별 혁명가들의 견결한 이념과 달리 조선, 중국 그리고 국제공산주의운동가 등이 뒤엉킨 혁명조직에는 비극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남만주철도의 측량기수로 용정에 파견된 김해연이 혁명조직의 일원이던 신여성 이정희와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일본군 장교에 접근해 토벌대 정보를 조직에 보고하던 그녀는 정체가 발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립이라든지 해방이라든지 하는 말이 좀 시큰둥했던" 착한 식민지인이었던 김해연은 이정희의 자살로 우연찮게 항일혁명조직과 연계된다.

그리고 그는 이후 만주항일운동사의 귀퉁이에서 서로를 일제의 밀정으로 의심하며 자신들의 동지 500여명을 학살한 혁명가들의 정치투쟁으로 기록돼 있는 '반(反) 민생단 투쟁'의 세계를 몸으로 통과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친구를 죽일 수 없는 아이의 세계에서, 친구라도 죽일 수 있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이 소설은 따라서 잘 짜인 역사소설이자 애틋한 연애소설, 그리고 인상적인 성장소설로도 읽힌다.

소설의 화자가 경험하는 두 개의 세계는 낮과 밤이라는 상징으로 대비된다. 연인의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은 김해연은 황해와 중국해가 마주치는 다롄 앞바다에서 "나는 그 두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두 개의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돌아오면 시내의 화려한 불빛들이 또 견딜 수 없이 공허했다"고 고백한다.

이 소설은 작가 김씨가 대학졸업 직후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1995년 일본 학자 와다 하루키의 연구서에서 접한 '유격대원 출신이다.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대단히 많다'라는 김일성에 관한 짧은 프로필 한 줄에서 잉태됐다. 그 한 줄의 섬광은 간도를 다룬 안수길 염상섭 등의 소설, 북한의 항일혁명사 소설 '불멸의 역사 시리즈' 에 대한 취재 등을 거쳐 그를 2004년 중국 옌지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의 9개월 간의 옌볜 체류는 시대의 광풍에 희생됐던 젊은이들의 사연을 다룬 이 소설로 결실을 맺었다.

김연수씨는 지난 봄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 경험은 이 소설에서 화자 김해연이 연인 이정희를 자살로 이끈 변절한 혁명가 최도식을 살해한다는 최초의 결말 대신, 최도식을 살려주는 것으로 바꾸도록 했다고 그는 말했다. 효자동의 전경들 앞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추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에게 "반드시 복수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는 낙천적 세계관을 긍정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발표작마다 역사적 문제의식과 신선한 소재, 탄탄한 취재, 그리고 빼어난 소설적 형상화로 주목받는 그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군의 포로로 잡혀간 두 조선인 형제의 곡절많은 귀향기를 소재로 한 새 장편을 이미 준비중이라는 그는 "<밤은 노래한다> 를 쓰면서 나를 억압하던 내 안의 상처가 많이 치유됐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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