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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동아시아 문학포럼 韓日中작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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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동아시아 문학포럼 韓日中작가 대담

입력
2008.10.0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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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대산문화재단이 공동주관하는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지난달 30일 개막, 5일까지 서울과 춘천 일원에서 열린다. 문학을 통한 동아시아 3국의 소통을 모색하는 자리다.

세 나라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한국의 황석영(65), 중국의 모옌(52), 일본의 시마다 마사히코(47)가 1일 오후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나 대담을 가졌다.

소설가의 사회적 역할, 체험과 상상력 등을 주제로 열띤 이야기를 나눈 이들은 "이번 포럼을 통해 세 나라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왜 소설을 쓰고 문학을 하는가.

▲황석영= 왜 쓰는가를 설명하기보다 어떻게 쓰는가를 설명하면 대답이 나온다. 나는 누가 이 질문을 하면 "궁둥이로 쓴다"고 답한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일차적으로 '노동'이라는 뜻이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작가인 나는 사람의 삶, 사회적 관계 이런 것과 연관된 일을 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점에서 나는 매우 행복하다.

▲모옌= 세 끼 밥 먹을 수 있고 만두를 사먹을 수 있어서 문학을 한다(웃음). 나는 남에게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것을 소설을 통해 쓸 수 있다는 점이 즐겁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혹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소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가. 소설은 사회의 불공평한 점을 고발할 수도, 아름다운 점을 노래할 수도 있다.

▲시마다 마사히코= 써야겠다고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고민했을 때 어느새 소설을 쓰고 있더라. 소설 원고는 사물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돈하고 비슷하다.

경제나 정치에 비해 긴 시간을 다루는 것도 매력있다. 개인의 고뇌를 묘사할 수도, 사회적 악의 고발도 가능하다. 잊혀져서는 안되는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에 대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이 문학이다.

- 모옌 선생은 '소설은 도구'라고 했다. 소설을 통한 사회적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옌= 소설가는 개인이 아니다. 여러 집단이 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주동적인 역할을 하는 작가도 있고, 내면의 문제를 성찰하는 작가도 있다. 나는 두 가지 성격을 다 갖춘 작가라고 생각한다.

▲황= 그것을 '문무겸장'이라고 한다(웃음). 사실 이런 질문은 과거의 유산이다. 문장을 잘못 써서 매를 맞아 죽기까지 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중압감에서 나온 물음 같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세 가지 화두에 집중했다.

공동체와 개인, 이동과 조화, 생존과 절제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다. 현대 작가는 억압이 표면적으로 드러났던 시대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시마다= 문학은 지금까지 시대의 영웅을 기억하기 위해 쓰이거나, 사회가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 쓰였다. 하지만 소설은 공동체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

가령 현실에서는 아저씨와 소녀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문학은 그들의 세계를 써 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총체적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

- 억압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는 않을텐데.

▲모옌= 현실에는 정치적ㆍ사회적ㆍ도덕적인 금기가 많다. 그런 것에 대항해야 하는 것이 소설가다. 좋은 소설가는 솔직하게 쓰는 소설가다. 가령 풍만한 유방과 살찐 엉덩이를 가진 여성을 그렇다고 묘사하는 것이 소설가다. 오히려 그렇게 쓰지 않는 사람이 변태다.

▲황= 동의한다. 소설가는 금기를 깨서 일상화하는 사람이다. 내가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북한을 방문한 것도 말하자면 그런 행위였다. 이후 150만명이 넘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했다. 다른 차원에서의 금기도 있다.

동아시아에서의 매춘을 소재로 한 <심청, 연꽃의 길> 을 썼을 때 성적인 묘사를 자세히 했는데 여고생 딸을 둔 어머니들이 항의하더라. 그래서 개정판에서는 많이 완화했다. _세 분은 모두 엄청난 시대의 격변을 겪었다. 소설가에게 체험과 상상력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

▲모옌= 어떤 소설가라도 자신의 체험이 기본이 된다. 물론 그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소설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하는 능력이다. 그런 전환의 과정이 상상력이겠지.

▲시마다= 가령 이성에게 인기 있는 여성과 남성을 만난다고 해도 나는 질투하지 않는다. 상상력을 통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설가는 타임머신의 발명가라고도 할 수 있다. 엔진이나 연료 없이도 그 시대와 현재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현대인이나 고대인이나 우리의 뇌와 마음은 ʼn?변화가 없다.

▲황= 내 경우에는 소설 쓰는 힘이 체험과 상상력 반반인 것 같다. 어려서 노동자구역에서 살았는데 또래들과 따로 놀았다. 운동자에 앉아 혼자 그림 그리고 얘기도 만들고 했다. 얼마 전 <개밥바라기별> 이라는 성장소설을 한 편 썼다.

생각해보니까 소설가 황석영이 있고, 문학적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 황석영이 따로 있더라. 체험은 소설가의 자산이고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 동아시아 3국은 역사 문제를 놓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문학을 통해 서로 화해하고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황= 각 국가는 역사를 자기가 통치하는 방향으로 국민을 이끄는 도구로 삼는 것 같다. 우리는 정권만 바뀌었는데도 현대사 교과서를 놓고 '자학적이다''좌익적이다' 이런 우익의 목소리가 나온다.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 정책 같은 것보다는 문학적 접근을 통해 공통분모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우회로를 통하자는 것이다.

▲시마다= 한ㆍ중ㆍ일 각국 정부는 경쟁적으로 더 국가주의적인 역사 기술을 강요한다. 정치가는 한 가지 생각을 강요하지만, 문학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모옌= 영토분쟁이나 역사교과서 분쟁은 정치가들에게 맡기자. 전 인류적인 관점에서 글을 쓰는 소설가들의 관점은 정치가들보다 더 높고 현명해야 한다. 개인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은 모두 통한다.

<홍까오량 가족> 을 쓸 때 주인공이 일본 병사를 수수밭에서 발견하고 죽이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일본 병사의 옷을 들춰본 뒤 그 안에서 아기 사진을 발견하고 그를 살려두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소설가에게는 국적이 있지만 좋은 소설에는 국적이 없다.

- 각국의 문학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황= 일본문학은 식민지시기 때부터 공유했고, 해방 후 단절이 있다가 4ㆍ19 이후 번역되기 시작했다. 김승옥, 이청준 같은 한국의 60년대 작가들은 일본문학으로부터 비로소 '모더니티'를 접했다. 중국문학의 경우 창피한 얘기지만 루쉰이 한국에서 1980년대까지 금서목록에 올랐을 정도로 접한 지 얼마 안된다.

고전에서 갑자기 현대 중국문학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일본문학의 정갈하고 단단한 모더니티, 중국문학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한국 문학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이웃으로부터 엄청난 예술적 에너지를 얻고 있다.

▲모옌= 김동인에서 안수길, 김승옥, 이병주로 이어지는 작품을 엮은 '남조선 소설집'을 읽었는데 휘황찬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3국의 문학작품은 공동의 인문적이고 미학적인 지향점을 갖고 있다. 안타깝지만 요즘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번역된 지 2,3년 정도밖에 안된다. 하지만 황석영 선생의 <장길산> 과 <손님> 등은 잘 알고 있다.

▲시마다= 한국과 중국의 근대문학은 디아스포라 연구, 문화연구 등이 활발할 때 일본 대학에서 많이 읽혔다. 한때 한ㆍ중 소설 읽기가 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문학보다는 드라마나 영화가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사실이다.

가치있는 번역물보다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통속소설, 상업소설만 팔리는 일본 출판계의 비참한 현실이 아쉽다. 이번 포럼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 작가 3인 프로필

■ 황석영

1943년 만주 출생. 고교시절인 1962년 단편소설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가 노동과 생산, 부와 빈곤의 문제에 천착한 소설집 <객지> 와 한국일보에 연재한 대하소설 <장길산> 등 리얼리즘 미학의 정점에 달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1993년 방북 사건으로 5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후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왕성한 창작욕을 보이고 있다. 고은 시인과 함께 한국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만해문학상(1989) 이산문학상(2000) 등을 수상했다.

■ 모옌(莫言)

1956년 산둥성 출생.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학교를 중퇴하고 농촌생활, 면유가공공장 노동자생활 등을 경험했다. 이후 해방군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1년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성욕, 물욕, 잔혹성 등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작품들로 문제작가로 떠올랐다. 1986년작 <홍까오량 가족> 이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으로 영화화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인생은 고달파> <생사피로> 등 10여편의 장편소설과 '백구와 그네' '빙설미인'등 80여편의 단편소설이 있다.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중국 소설가로 꼽힌다.

■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

1961년 도쿄 출생. 도쿄외국어대 재학중이던 1983년 '상냥한 좌익을 위한 희유곡'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나는 모조인간' '돈나ㆍ안나' 등 현대사회가 내포하는 문제를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일본문단의 젊은 기수로 떠오랐다.

소설 뿐 아니라 시, 희곡, 오페라대본 등 광범위한 장르에서 작품활동을 펼쳤으며 한국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984년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 으로 노마문예신인상, 1992년 <피안선생> 으로 이즈미교카상, 2007년 <카오스 아가씨-샤먼탐정 나르코> 로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했다. 현재 호세이대 국제문화학부 교수로 있다.

진행·정리=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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