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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속 달러' 충분치 않다/ 1000억弗 美국채, 언제든 쓸수 있는 '주머니 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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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 속 달러' 충분치 않다/ 1000억弗 美국채, 언제든 쓸수 있는 '주머니 돈' 아니다

입력
2008.10.0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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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방어와 시중 달러 공급을 위한 정부의 지속된 실탄(외환보유액) 개입. 나라 곳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미국 발 금융위기는 실물경제로, 또 유럽으로 급속히 전이되고 전 세계 신용 경색 현상은 갈수록 심화된다. 달러 조달 길이 꽁꽁 막힌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만기 외채를 갚기 위해 정부에 잇따라 손을 벌린다. 50억달러, 100억달러, 200억달러…. 곳간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외환보유액의 상당액을 투자한 미 국채를 더 이상 시장에 내다팔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매우 극단적이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누구도 원하지 않고 또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해도, 개연성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정부는 "필요 시 외환시장에 충분한 달러를 투입하겠다" "실탄은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적잖은 전문가들이 정부의 자신감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위기 시 최후 보루인 외환보유액을 통 크게 사용(시장개입)하는 정부의 외환시장정책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말 충분한가

정부 주장과는 달리 현 외환보유액이 그리 넉넉한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적정 외환보유액이 얼마인지는 늘 논란거리지만,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충분하달 수는 없는 수준이다.

가장 '보편적인' 적정 외환보유액 기준은 유동외채(1년내 갚아야 할 외채) 대비 외환보유액.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적정 외환보유액은 2,100억달러 수준"이라고 언급했던 것도 이 기준에 따른 것이다. 6월말 현재 유동외채는 2,223억달러로 외환보유액(8월말 2,432억달러)에 거의 근접한 상태. 툭하면 하루 10억달러, 20억달러씩 실탄 개입이 이뤄지고, 이미 정부가 밝힌 대로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해 100억달러 이상을 외화자금시장에 투입한다면, 외환보유액이 유동외채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심지어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3개월간 수입액과 유동외채를 합한 종합거래를 적정 외환보유고의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이미 적정 수준에 500억달러 이상 부족한 상태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유동외채 중 1,000억달러 가량은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본점에서 빌린 것으로, 우리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털어서 메워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은 일촉즉발의 전시상황에 대비한 비축 자금이다. 평시에 곳간을 비워 버리면 언제든 투기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고 위기 상황에서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지금 같이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얼마나 동원가능한가

위기시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이 얼마인지도 냉철히 따져봐야 된다. 장부상 외환보유액이 얼마이든, 당장 동원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주목해봐야 할 것은 미국 국채 투자분이다. 정부가 "국채만큼 안전하다"고 하는 정부기관채까지 합치면 1,000억 달러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외환당국에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 미 국채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지만, 최근의 금융위기 와중에서 미 국채의 절대권위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만약 금융쇼크와 재정적자로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된다면? 시장의 장기채 기피현상이 계속된다면? 최대 채권보유국인 중국과 일본이 팔아치운다면? 미국정부가 국채매각을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다면? '만약'이긴 하나, 이런 상황이 온다면 미 국채를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게 되고 결국 외환보유액의 '가용'능력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이 미 국채에 투자가 돼 있는데 지금 위기의 진원이 미국이라는 점이 문제"라며 "미국 경제가 극도로 악화된다면 미 국채 투자분은 위기 시 활용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지금은 외환을 소진하기보다 오히려 쌓아가야 하는 시점"이라며 "적어도 급속한 개입으로 실탄을 쓰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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