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막이 올랐다. 초청작 중에 체호프의 연극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러시아가 낳았지만 세계인의 작가가 된 안톤 체호프, 그의 연극이 오늘날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의 '세 자매'는 출구 없이 갇힌 반복적인 삶과 거대한 자연 속의 왜소한 인간 존재를 대변하듯 회전 무대 위 거대한 숲과 TV촬영장 세트 같은 무대를 재현했다.
무대 사실주의적 환영을 충실히 창조하는 가운데 체호프극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인 삶의 환영적인 속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칠레에서 온 '네바'(블랑코 극단)는 아내 올가의 시선에 포착된 체호프의 삶, 연극 행위에 대한 메타적 주제, 러시아혁명에 빗댄 칠레 정치현실에 대한 비평이라는 세 겹을 담는다. 세 명의 배우가 겨우 움직일 정도로 축소된 무대 위 작은 전기난로 하나만으로 조명을 대체한 발상이 신선하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는 '바냐 아저씨'가 원작이다. 그럴듯한 드레스 한 벌 없이 현대의 평상복을 입고도 가능한 간소한 체호프를 보여준다.
감정적 소동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는 난장 속에서 말과 행위의 불일치, 연극적 가장놀이 같은 삶의 속성을 명확히 그려낸다. 주방 배식구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고, 위장과 속임수를 폭로하며, 과도한 감상주의를 조롱하는 설정이 재미있다.
국내 참가작으로 12일까지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벚꽃동산'은 액자틀로써 체호프의 주제를 공간성으로 조형한다. 가두려 해도 가둘 수 없고 간직하려 해도 간직할 수 없는 생의 부유하는 시간들이 빈 사각 틀 너머 허허롭게 뚫려 있다.
유아용 의자와 함께 놓인 흔들의자는 인간이 겪는 삶의 시간성을 압축해 보여준다(극단 수, 구태환 연출, 박동우 무대미술).
붙박은 삶과 떠돌이 삶의 회한과 동경, 그 사이를 떠도는 체호프의 인물들에게서 오늘날 관객은 세계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비애감을 엿본다. 인생의 '불협화음'을 연기와 무대요소의 '화음'으로 그려내는 내용과 형식의 미묘한 모순은 극예술가들의 도전의욕을 부추긴다.
우리 얼굴의 애교점 같은 삶의 위장술과 감정적 치장의 폭로에 즐거워도 하지만 삶의 공허함과 시간의 파괴력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견뎌내는 인간 존재의 유약함에 살짝 눈물이 비치기도 한다.
이 삶의 생생한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체호프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로 3, 4일 러시아 타바코프 극단의 '바냐 아저씨'가 남아 있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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