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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근혜, 침묵을 깨야

입력
2008.10.0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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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침묵이 너무 길다. 국정 현안이 잇따르는데도 입을 열지 않고, 드물게 하는 말도 하나마나 하다. "전문성을 갖춘 여성 의원들이 많이 들어와 한나라당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도록 잘 해 달라"(지난달 23일 한나라당 여성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국민이 먹는 것만은 걱정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 의무이자 책임"(멜라민 파문에 대해 미니홈피에서) 따위다.

더구나 견해를 밝혀야 할 자리라면 아예 피해 버린다. 한나라당 최고ㆍ중진 연석회의에는 7월 30일 첫 회의를 빼고는 참석하지 않았고, 종부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지난달 23일의 의원총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말도 정치인의 책임이다

반면 사람들은 부지런히 만난다. 친박계 '여의포럼'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요청만 있으면 당내 계파나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만나서 얘기를 듣는다. 측근인 홍사덕 의원은 "어느 분야든 뛰어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책을 구해서 읽든가 직접 만나 얘기를 듣는다"며 "본받을 만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학습 태도'만으로 친다면 맞는 말이다. 여야를 통틀어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큰 조직과 세력을 확보한 정치적 위상으로 보아 '준비된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학습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는 지혜의 습득이 전부가 아니다. 지도력의 핵심은 용기와 결단이고, 그 원천은 신뢰다. 그리고 정치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엇보다 요구되는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에서 싹튼다. 또 정치지도자의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가 국민의 판단을 이끄는 것이고, 이는 다른 정치행위와 마찬가지로 말을 통해 이뤄지게 마련이다.

침묵의 이유는 있다. 측근들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배려를 주된 이유로 꼽는다. 자칫 이견으로 받아들여져 분란이 일어나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침묵함으로써 이 대통령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송하다. 박 전 대표가 국정 현안에 대해 이 대통령과 견해가 같을 경우를 전혀 설명해 주지 못한다. 대체로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 대통령의 정책 제안을 슬쩍 거들기만 해도 정치적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그러니 박 전 대표가 '부자 몸조심'에 들어갔다는 의심이 자랄 수밖에 없다. 이런 의심을 씻기 위해서라도 박 전 대표는 침묵을 깨야 한다. 더욱이 '잃지만 않으면 이긴다'는 판단의 근거도 따져보아야 한다.

그의 정치적 자산은 풍부하다. 아버지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국민 평가가 가장 높다. 그런 혈연을 바탕으로 탄탄한 지역기반도 갖추었다. 그러나 당 안팎의 고른 지지는 '대통령의 딸' 이외의 다른 요인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으뜸 요소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게 그의 '근거리 흡인력'이다.

장거리 소통능력 갖춰라

조지타운대 언어학과 데보라 태넌 교수에 따르면 남녀의 대화 방식은 판이하다. 남성은 정보 전달을 위한 '리포트 토크(Report Talk)', 여성은 친밀한 관계 확인이 주목적인 '라포르 토크(Rapport Talk)'를 즐긴다. 박 전 대표의 근거리 흡인력도 그가 여성적 라포르 토크의 달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라포르 토크는 인간적 친근감을 안길지언정 지도자로서 믿고 따를 신뢰를 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리포트 토크에 비해 '통달 거리'가 짧아 대중 정치가가 전적으로 의존할 게 못 된다. 지난해 한나라당 후보 경선 당시 근거리 접촉 경험을 통해 많은 대의원이 '이명박 지지'에서 적잖이'박근혜 지지'로 돌아선 반면 여론조사에서 끝내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라포르 토크에 기댄 때문 아닐까.

박 전 대표는 리포트 토크 능력을 적극 개발해야 하는데, 현안에 대한 견해 표명보다 확실한 리포트 토크는 없다. 정치적 책임과 함께 그가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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