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의 반란이었다. 미 하원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반란표는 필사적으로 구제금융법안 합의안을 도출한 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의 노력을 일순간에 무위로 돌려놓았다. 당연히 의회 통과를 예상했던 양당 지도부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이날 하원 본회의 표결 전 양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의 지지표를 확보하느라 숨가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부결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의원들이 구제법안이 갖는 심대한 파장을 모를 리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표 결과 여당인 공화당에서 반발표가 무더기가 쏟아졌다. 민주당은 찬성 140표, 반대 95로 통과에 찬성하는 입장이 더 많았던 데 반해 공화당은 찬성 65표 반대 133표로 더 많은 반대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집단 반대표는 표결 직전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조지 W 부시 정부에 대한 비난 발언도 막판 표결 심리에 작용했다고 미 언론들은 지적했다. 펠로시 의장은"빌 클린턴 정부가 남긴 재정흑자를 조지 W 부시 정부가 탕진했다"고 공화당 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펠로시 의장의 발언에 공화당 의원들이 격분했으며, 공화당에게는 당파적 발언이었을 이 말이 표결에 영향을 줬다"고 해석했다. 펠로시 의장은 부결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공화당 의원, 아니 일부 공화당 의원들 때문에 경제를 망치게 생겼다"고 열변을 토했다.
의회내 소수파로 국정운영의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도 공화당 의원들이 부결을 주도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법안이 설마 부결되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이렇게 하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정치적 책임은 면할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양당의 이념적 토양과 총선을 앞둔 정치 상황 그리고 의회의 구심적 부족에 있었다.
엄청난 혈세로 구제안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국가의 민간개입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탈규제 정서와 어긋난다. 민주당 역시'서민은 제쳐두고 왜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을 도와줘야 하느냐'며 반발이 컸다.
실제로 많은 의원들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심에 반하는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딜레마를 토로하기도 했다.
공화당 지역구에는 구제금융법안을 성토하는 유권자들의 항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폭스비즈니스닷컴은 여론조사 결과 구제금융에 찬성한 의원에게 이번 선거에서 표를 주지 않겠다고 한 응답자가 64%에 달했다고 밝혔다. 경제주간지 포천은 이를 두고 "미국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계급분노(class fury)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BBC 방송은 "의원들이 정부와 지도부의 지지 압력보다 유권자들의 부결 압력에 더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의 부패와 탐욕이 낳은 참담한 결과를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통해 메우려는 법안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의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데보라 프라이스 의원은 표결 뒤 "재선돼야 한다는 강박감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구제금융을 제공받는 기업이 정상화할 경우 납세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다수 국민에게 이 점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국민들은 다만'과도한 세금 부담'에만 초점을 맞췄다. 미 의회 전문가 벤 퍼싱은 30일 워싱턴포스트의 웹 사이트에 기고한 글에서"월가를 구제(bail-out)한다는 부정적 어감의 단어 선택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정부는 고자세를 버리고 국민들에게 간청했어야 했다"고 전했다.
벤 퍼싱은"존 매케인, 버락 오바마 대선 후보들이 구제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의원들을 설득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며 "누구도 책임지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며 의회의 구심적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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