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미국식 구제금융 해법으로 금융위기를 벗어나려는 유럽 국가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대형 금융기관에 정부 돈을 쏟아 붓거나 국유화하는 조치들이 잇따르면서 구제금융은 이제 미국과 유럽의 공통 키워드가 돼버렸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재무부는 업계 2위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은행인 하이포레알이스테이트(Hypo Real Estate)에 500억달러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을 실시하겠다고 29일 발표했다. 벨기에 정부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벨기에ㆍ프랑스 합작은행인 덱시아 은행에 대해 70억유로 상당의 긴급 자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브 레테름 벨기에 총리는 "벨기에 연방정부와 지방 정부 3곳의 책임자들이 긴급 회동, 24시간 이내에 덱시아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덱시아는 29일 주식시장에서 30% 가까이 폭락해 최근 10년 내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앞서 베네룩스 3국(네덜란드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은 합작 은행인 포티스에 112억 유로를 투입키로 결정했다. 전날 파산한 노던록 은행의 국유화를 선언한 영국 정부는 또 다른 대형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업체인 브래드포드앤빙글리(B&B)도 부실 모기지 대출액 910억 달러를 떠안고 국유화하기로 했다. 아이슬란드 정부도 자국 최대 은행인 글리트너 은행을 국유화하는 조건으로 8억7,000만달러를 긴급 지원키로 했다.
금융위기와 유가하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러시아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은행과 기업들이 대외채무 상환에 지장이 없도록 국영 개발은행을 통해 최고 530억 달러까지 지원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 은행과 기업들은 올해 말까지 모두 450억달러를 갚아야 한다.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미친 제도'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역시 30일 자국 주요 은행 및 보험회사 최고 경영자들과 긴급회동을 통해 금융업계에 대한 지원을 선언했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지지했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부가 은행을 지탱해야 하겠지만, 금융시장도 이번 기회에 구조적인 문제점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29일 세계 경제를 패닉 상태로 몰고 간 미국발 금융 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그는 마르세유에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및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 함께 한 회동에서 "조만간 바로수 위원장과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및 주요 8개국(G8)내 4개 유럽국가(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들이 모여 금융정상회담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그동안 G8에 중국 멕시코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경제대국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이들 국가 정상도 초청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 국가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미국식 해법을 그대로 좇아가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과 같은 금융위기가 확대될 경우 사태를 진정시킬 실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씨티은행은 29일 낸 보고서에서 "유럽 은행들은 전반적으로 이자수익이 적기 때문에 대규모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주장했고, 영국 금융기업인 바클레이즈 캐피털도 "유럽에서 미국처럼 구제금융을 실시할 수 있는 국가는 독일뿐이다"고 발표했다. 9월 유로화 사용 15개 유럽 국가들의 경기체감지수(ESI)는 전월대비 0.8포인트 하락한 87.7로 나타나 2001년 9ㆍ11 사태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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