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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몸사린 재계 '자린고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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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몸사린 재계 '자린고비 전략'

입력
2008.09.3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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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그룹의 한 임원(55)은 얼마 전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팀장(상무)과 팀장 아래 3명의 부장이 각각 갖고 있던 총 4장의 법인카드에 대해 반납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경비 절감 차원에서 앞으로는 팀 내에서 한 장의 법인카드만 사용하라는 주문이 동시에 내려왔다.

#2. B그룹 계열사의 김모(48) 팀장은 최근 새로운 사업계획서 작성을 마쳤지만, 이를 위에 보고하지 않은 채 고민만 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새 사업계획서는 아예 올리지도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당분간 거의 모든 신사업을 미루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내년 상반기까지 실물경제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각 기업들이 앞 다퉈 긴축 경영에 나서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기업이 먼저 몸을 사림에 따라 경기 둔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은 최근 수립한 '2009년 경영계획'에서 내년 매출액이 경기 악화 등에 따라 올해 예상 매출액(1조8,785억)보다 16% 이상 줄어든 1조5,591억원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대규모 인수ㆍ합병(M&A) 등은 보류하고 수익성 강화에 초점을 둔 보수적 경영을 펼 계획이다.

삼성과 LG, SK 등도 환율 변동폭이 워낙 커 내년 경영 계획에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나, 큰 줄기는 긴축 경영으로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삼성전자 3분기 실적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SK에너지도 환율이 널뛰기를 하며 하루에도 수백 억원의 환차손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도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KT는 이미 올 하반기부터 법인카드 사용 등 사업 부서별로 예산 절감에 들어갔다. SK텔레콤도 소모품 사용과 법인카드 사용한도 등을 조정했다. 특히 통신업체들의 경우 각종 할인행사와 보조금 등이 축소될 수 있어 덩달아 이용자들의 혜택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철강 및 조선 업체들도 경비 절감 운동을 펴고 있다. 포스코는 24일부터 내달 14일까지 사무직원 2,200명을 대상으로 혁신체험 활동 등을 진행, 원가 및 경비 절감 운동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STX그룹도 내년에는 에너지 사업 등 신규 사업 부문의 속도를 다소 늦추는 대신, 인수 기업 경영정상화에 총력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건설업계는 이미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중견건설사 현진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근 두바이 중심지 비즈니스베이에 보유한 오피스빌딩 사업부지를 현지 부동산개발회사에 1,500억원에 매각했다. 대주건설도 경기 파주의 주택사업 부지를 매물로 내놓았다.

기업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은 이날 장중 한때 1,200원을 돌파했다. 모든 것이 불안하다 보니 몸부터 사리게 된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이날 내놓은 '미 금융불안에 따른 파급영향'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5.6%가 "글로벌 실물경제의 장기 침체로 발전할 것"이라고 답했고, 25.0%는 "국제 금융위기로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29.4%에 그쳤다.

특히 이번 사태에 따른 올 하반기 경영목표 수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는 기업이 52.7%였지만, "수정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기업도 47.3%나 됐다.

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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