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자영업자 A씨는 올 초 눈에 띄는 광고 메일을 하나 발견했다. '해외 게임장을 인터넷 실시간 생중계로 보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이용했던 A씨는 호기심에 해당 사이트를 접속했고 광고 내용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됐다.
화면에는 실제 도박장에서 딜러들이 카드를 돌리고 있었고 A씨가 주문을 내면 실시간으로 현장에서'베팅'이 이뤄졌다. A씨는 판돈 제한도 없는 이 실시간 생중계 도박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1억원이라는 거액이 사라진 뒤였다.
해외에 도박장을 개설한 뒤 인터넷으로 현장을 생중계하는 신종 수법으로 국내 네티즌을 끌어 모은 인터넷 도박단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김주선)는 총책 이모(35)씨와 사이트 운영진 양모(42)씨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도주한 김모(36)씨 등 2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이씨는 필리핀에서 인터넷을 통한 바카라 서비스 제공이 합법이라는 점에 착안, 범죄를 구상했다. 그는 마닐라의 한 사무실에 카지노용 테이블 3대와 방송장비를 갖추고 필리핀인 딜러 30명까지 고용했다.
다음 단계는 네티즌과 현장을 연결해줄 인터넷 사이트 물색이었다. 신종 수법에 눈독을 들인 9개 인터넷 사이트가 5,000만원씩의 선납금을 내고 이씨와 계약을 맺었고 스팸메일 등을 통해 네티즌을 끌어들이는 이른바 '영업파트너'도 동참했다. 수익 분배 조건은 이씨가 50%, 도박 사이트들이 15%, 영업파트너들이 35%였다.
지난해 2월 영업이 시작되자 국내 도박광들은 단숨에 매료됐다. 컴퓨터에서 실시간 생중계를 보며'베팅'을 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씨는 중계 화면에 CNN의 실시간 뉴스가 방송되는 대형 TV가 함께 보이도록 해'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한 판에 최대 1억2,000만원을 걸 수 있도록 한 점도 도박광들의 구미를 당겼다. 실제 하루에 1억원 이상을 도박자금으로 송금한 사례도 상당수 발견됐다.
1년여만에 5,000억원의 판돈이 모였고 이씨 등은 20%인 1,000억원을 순이익으로 챙겼다. 이는 지난해 강원랜드 당기순이익(2,927억원)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들은 최신형 벤츠 S550, 포르쉐 카이엔, 아우디 R8 등 고급외제차 6대를 굴렸고 동백섬과 바다가 보이는 부산 해운대의 264㎡(80평) 아파트를 5억3,000여만원에 빌려 국내 아지트로 사용했다.
서울 여의도 아파트(9억여원) 등 부동산도 속속 매입하는 등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썼다. 사과상자에 담긴 현금 15억여원 등 검찰이 압수한 범죄수익만 123억여원에 달했다. 검찰은 나머지 자금의 소재에 대해서도 계속 추적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일본과 태국 등에 서버를 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도박장을 개설, 800억원의 수익을 올린 도박단도 적발해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검찰은 이들 중 일부가 폭력조직과 연계된 점에 주목하고 조폭 세력이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 여부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인터넷 도박 자금 입출금에 사용된 은행 계좌는 발견 즉시 지급정지 되도록 하고 해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사업자들에게 자체 모니터링 및 접속 차단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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