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서울까지 소변을 운반하는 비용은 얼마나 들까. "그걸 남세스럽게 왜 옮겨"라는 질문이 퍼뜩 튀어나오겠지만 곧 입이 벌어진다. 답은 '약 100만원'이다. 계산 빠른 이들은 차라리 직접 왕복(20만원 남짓)하는 게 낫겠다고 여길 법하지만 그럴 순 없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 소변의 정체를 알면 의문이 풀린다. 때는 2007 FIFA 세계청소년월드컵(U-17) 기간, 배송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전국 9곳에 흩어진 24개국 선수들의 약물복용(도핑) 검사용 소변을 경기 전, 도중, 후 등 여러 차례 받아 저온용기(섭씨 2~8도)에 넣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날 새벽 6시까지는 서울 과학기술원 도핑센터로 보내야 했어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밤을 꼬박 새기도 하는 피 말리는 작업이죠."
한마디로 특급 배송인데, 보통 생명공학물류(物流)로 분류된다. 생산자(발신인)와 소비자(수신인)를 물품으로 연결하는 물류에도 격이 있는 법. 스피드가 관건인 퀵서비스나 택배는 일상에 흔하지만 어디까지나 단순 배송에 그친다. 반면 고도의 첨단기술을 장착하고 전세계를 오가는 생명공학물류는 물류 목록 상단에 자리한다.
특히 국내 생명공학물류만큼은 여성의 활약이 돋보인다고 한다. 오토바이 화물차 컨테이너 등이 떠올라 험한 남성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다른 물류분야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네덜란드계 다국적 물류업체 TNT코리아의 클리니컬익스프레스(Clinical Express) 라이프사이언스(Life ScienceㆍLS)팀이 대표적이다. 2003년 남성인력으로 시작됐던 팀은 현재 모두(5명) 여성이 장악했다. LS팀의 여성 물류전사 안선옥(29) 팀장, 임지화(27) 사원을 만났다.
"친구들이 오토바이 모냐고 묻지요. 늘 전화통을 붙잡고 사니까 부모님은 설명을 아무리 드려도 전화 받는 일인 줄 알고 걱정하셨고요. 관련 자격증(IATA Diploma)도 있는데…."(임 사원) "그저 택배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아요. 배송 과정에 벌어지는 수만 가지 변수와 독특한 업무를 잘 모르니까요."(안 팀장) 생소한 분야다 보니 세간의 이해도 얕다는 얘기다.
우선 제대로 이해부터 하자. 생명공학물류는 단순혈액, 소변 샘플(임상 실험용)은 기본이고 인체조직, DNA, RNA, 제대혈, 세포치료제와 단백질 추출물(이상 임상 실험 전 후보물질) 등 다양한 생명공학 물품을 포장부터 통관까지 책임지는 원스톱 물류 시스템이다.
이쯤에서 고개를 끄덕이기엔 이르다. 생명공학 물품은 특성상 까다로운 절차 및 과정도 거쳐야 한다. 국가간 배송 시 항공 일정 및 운송 가능여부 점검, 바이오 물품인지라 유독 복잡한 통관을 거치기 위한 서류구비 등 꼼꼼한 준비는 필수다.
특수용기뿐 아니라 물품의 온도 정보 기록 작성 및 첨부, 조심스러운 포장 등 정교하고 치밀한 노하우와 네트워크, 경험도 뒷받침돼야 한다. 물품이 도착할 때까지 위성추적장치(GPS)로 실시간 추적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LS팀은 생명공학물류라는 '종합예술'의 지휘자인 셈. 직접 물품을 들고 배송을 하진 않지만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컨트롤한다. 지휘자의 사소한 실수에 악단의 선율이 엉기듯 최적의 온도를 맞추지 못하거나, 작은 흔들림에 움직이거나, 1초만 늦게 도착해도 생명공학 물품은 폐기물로 변할 수 있다.
안 팀장은 "일생에 단 한번뿐일지도 모르는 선물을 전달해주는 매력적인 일"이라고 했고, 임 사원은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업무"라고 했다. 찬찬히 들어보면 그들의 자부심과 성취가 와 닿는다.
"얼마 전 한 남편이 암 투병중인 부인의 조직샘플을 태국의 연구소로 보내야 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단서가 달렸죠. 부인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조직을 다시 떼기가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부부애가 애틋해서 픽업부터 도착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어요."(안 팀장)
"80%이상 화상을 입은 환자가 부산에서 피부이식을 원해요. 다음날 수술시간(오전 10시)에 맞추려면 전날 새벽 4시께 서울에서 피부조직을 받아 가야 해요. 더구나 운반 도중 미세한 움직임에 피부조직이 접히면 시간을 맞추더라도 쓸 수가 없게 돼 이식 자체를 할 수 없어요. 제 역할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죠."(임 사원)
비슷한 사례는 많다. 다시 생기지 않는 제대혈, 냉장상태(섭씨 1~8도)를 유지해야 하는 소아용 백신, 72시간이 지나면 생존확률 '0'인 세포치료제, 백혈병 혹은 암 환자를 위한 임상용 샘플 등 정성어린 애정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물품들이다. 안 팀장은 "물류가 지나는 공간은 하늘이나 바다처럼 차갑지만 (물류의) 지향점만큼은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특성 때문에 여성의 가치는 생명공학물류에서 빛을 발한다. 수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포장지 크기부터 각국의 온도까?계산해 넣어야 하는 세심함과 꼼꼼함, 각종 변수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융통성, 고객의 깐깐한 요구사항을 경청하는 배려의 마인드가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한다.
특히 안 팀장은 "여성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특별한 분야"라 여겨 2005년 당시 여성인력이 단 1명도 없던 생명공학물류에 자원해 3년 만인 지난해 말 팀장을 꿰찼다. 험한 일이라는 이유로 다른 물류업계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 임 사원도 지난해 TNT코리아 LS팀에 입사, "물류는 과학"이라는 소신에 맞는 꿈을 이뤘다.
그러나 고역(苦役)이다. 연구소 병원 등의 대형고객을 직접 설득해야 하고, 큰 프로젝트가 있으면 밤새 꼬박 전화통을 붙잡고 앉은 채로 물품이 움직이고 있는 전세계를 누벼야 한다. 애지중지 보낸 예민한 물품이 중간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그러기엔 "(생명공학물류가) 아직 못 가본 길, 창조해야 할 길이 많다."(안 팀장)
▦안선옥 팀장과 임지화 사원이 전하는 생명공학물류 사례
ㆍ 도하아시안게임 경주마 7마리 도핑용 혈액 샘플 하루 만에 배송-해당 승마선수 금메달
ㆍ 세포치료제 72시간 내, 골수 이식용 혈액 24시간 내 국가간 운송-이식 성공
ㆍ 제대혈 2시간 안에 수거해 24시간 내로 세포은행에 입고-배송 완료율 100% 달성
ㆍ 화상 환자를 위한 피부조직 운송-시간 엄수 및 조직이 접히지 않게 하는 포장이 핵심
ㆍ 임상 실험용 샘플을 전세계로 배송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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