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전윈 지음ㆍ박명애 옮김/문학과지성사 발행ㆍ611쪽ㆍ1만4,000원
출판 4면 /
오십번지 서쪽에 수정금자탑이 세워지자 사람들이 변했다. 지식과 소양, 지위가 10배씩 격상됐고 사람들의 키가 10센티미터씩 커졌다. 오십번지 서쪽에서 갈고리와 칼로 돼지나 잡던 백정이었던 라오서, 그는 탑이 건축된 뒤 붉은 넥타이를 매고 이 탑의 최고 관리자가 된다.
수상한 공기를 느낀 라오서는 신발 수선공 라오마를 급히 불러들이고 벽을 열어 기록영화를 틀어주는데… 영화는 변모한 오십번지 서쪽 사람들의 일상을 비춰준다. 목욕탕주인 라오펑, 가라오케 접대부 샤오스, 때밀이 라오양 등 이들은 동일한 표정과 템포, 분장, 헤어스타일을 하고 천편일률적인 자세로 웃어댄다. 수정금자탑의 건축으로 신명나게 날뛰어야할 이곳 사람들이 왜 이렇게 멍청해졌을까.
중국 신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류전윈(50)의 장편소설 <객소리 가득찬 가슴> 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으로 변한 현대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희극 형식을 차용, 라오서로부터 사람들의 변한 이유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받은 라오마가 이들 소시민들의 '객소리'를 청취하는 과정을 그린 세태풍자소설이다. 라오마는 "사람들이 멍청해진 것은 목욕탕물이 전부 고갈돼 한 세기 동안 폐업했기 때문"이라는 라오펑의 객소리를 듣기도 하고, 넝마주이 라오후가 폐기물질로 변한 이곳 사람들을 주워 올리는 기괴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객소리>
작가는 마치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처럼 꿈과 현실, 진(眞)과 가(假)를 몽환적이고 급격한 형식 속에 교차시킨다. 소설 속 수정금자탑으로 상징되는 정보통신기술과 대중매체의 발달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대인들을 정신나가고 멍청한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메시지를 실어나른다. 독자는 이윽고 "자기 자신도 확실히 약간은 정신이 나가고 또한 약간은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멍청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았다고 하더라도 너는 강제로 미쳐야 해"라는 라오마의 뼈아픈 자각과 절규가 자기 것인양 몸부릴칠지도 모른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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