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와이너 지음ㆍ이경식 옮김/랜덤하우스 발행ㆍ1,000쪽ㆍ3만5,000원
"2001년 9월 11일에는 뉴욕, 워싱턴과 펜실베이니아에서 대략 3,000여명이나 되는 미국인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3,000여명이 더 희생되었다… 이런 결과가 빚어지도록 한 범죄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CIA가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 즉 '세상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대통령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할 정도로 무능했다는 점이다."
세계의 염탐꾼에 대한 장문의 탄핵문은 이렇게 허두를 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대한 공공연한 비밀 하나. 이제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미국의 정보 분야에서 2류로 밀려난 조직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듯 조직의 치부를 파헤친 책이 공공연히 나와 출판년도(2007년)에 미국의 내셔얼 북 어워드를 받고, 뉴욕타임스와 타임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까지 선정될 엄두를 못 냈을 터이다. 비밀 공작과 테러에서 나아가, 실패와 실수의 동의어가 바로 CIA라는 세간의 혐의가 사실로 확정된 셈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CIA의 사업을 직설적으로 압축했다. "역겨운,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필요악이라는, 정치적 둔사다. 책은 쐐기를 꽂는다. CIA 60년사는 실패의 역사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미국을 무지에 빠지게" 한 주범이라며 유죄를 선고한다. 반대로 CIA는 조직의 무능과 미국의 치부를 숨기는 데는 유능했다.
이 책은 CIA가 은폐와 거짓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어떻게 휘둘러 왔는지를 한국전쟁부터 베트남전, 워터게이트 사건, 이라크전쟁까지 6개 항목에 걸쳐 생생한 증언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목적이 언제나 수단을 합리화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유일했으니까요."(93쪽) 1950년 소련에 대한 역정보 작업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한 CIA의 변명은 이후 각종 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수록 교묘해진 변명에 대한 시작이었을 뿐이다.
한국 관련 부분은 인상적이다. 그들의 무지 혹은 무력이 여지없이 폭로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전 당시 CIA가 동맹자로 삼은 상대는 부패하고 믿을 수 없는 두 지도자, 이승만과 장개석뿐이었다."(99쪽) 북한 피난민을 공작원으로 훈련시켜 공중 투입시키는 등 극비의 작전이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CIA는 왜곡ㆍ은폐에 급급했다.
책은 특히 북한에 대해 CIA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폭로하며 "CIA가 하는 일이란 부족한 정보들을 백악관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부합되게 꿰맞추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또한 책은 36쪽에 걸쳐 한국전쟁 당시 문건들도 공개하며 의미를 밝힌다. 이번에 최초 공개되는 서류다.
저자 팀 와이너는 뉴욕타임스 기자로 1988년에는 미 국방부의 비자금을 파헤친 기사로 퓰리처 상을 받기도 했다. 번역본이 1,0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은 그야말로 발로 씌어졌다. CIA 전ㆍ현직 국장 10명과 요원 300여명을 수천여 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5만여 건의 관련 문서를 확보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분쟁지역을 여러 차례 현장취재하는 등 탐사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터넷 상의 신조어 사전 사이트인 urbandictionary의 CIA 뜻풀이를 보자. "영국의 M16, 이스라엘의 모사드, 소련의 KGB 등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엉망진창으로 꼬인 거대 조직(a huge fucking mess)." 이후의 신랄한 야유에 비한다면 그나마 가장 점잖은 풀이다.
이 책을 옮긴이는 "미국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을 이해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했다. 어느 쪽이든, 미국을 움직이는 핵심 조직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평가인 셈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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