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루디네스코 지음ㆍ문신원 옮김/에코의서재 발행ㆍ272쪽ㆍ1만3,500원
시인 랭보는 '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마녀, 비참함, 증오 등 파멸적 요소들을 찬미하며 이렇게 읖조렸다.'내 악마에 들린 자의 수첩에서/ 이 흉측스러운 몇 장을 뜯어내 덧붙인다.' 그 수첩에 기록돼 있을 법한 악(惡)의 목록은 바로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 <악의 쾌락> 이다. 악의>
인간이 쾌락과 맞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 특히 뒤틀린 쾌락이 속삭이는 유혹의 소리에 인간은 신음했다. 그 중
성도착은 수위권을 거뜬히 차지할 것이다. 파리7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변태와 도착의 심리를 역사와 철학, 문학과 심리학 등의 경계를 오가며 파헤쳐 보인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들 심산이다. 자크 라캉의 애제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 프랑스 최고의 정신분석학자 등의 수식어가 함께 하는 저자의 책은 <정신 분석 대사전> 등 2종이 국내 소개돼 있다. 정신>
저자는 변태란 누구에게나 있는, 극히 범속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것이 일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파멸적 징후로 드러나기도 했지만, 예술적 숭고미의 단초이기도 했다. 다소 파격적으로도 들릴 이 주장은 그러나 철저히 역사적 전거를 기초로 한다.
보통 사람들의 허튼 상상을 비웃는 듯한 관련 삽화들이 곳곳에 나오지만, 기실 이들은 고대나 근대의 미술품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인간의 마성을 다룬 4장 '아우슈비츠의 고백'에 나오는 홀로코스트 대목은 인간의 근본과 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사드가 신에 맞서 육체를 유일한 쾌락의 장소로 장려했다면, 성과학자들이 도착증 목록을 만들어 쾌락과 공포를 길들이려 했다면, 나치는 도착증이 지닌 다양한 얼굴을 국가적으로 거의 마지막까지 밀어붙였다."(295쪽)
저자는 오늘날 도착자의 극단적 경우가 오사마 빈 라덴이라고 지난해 리베아시옹 지와의 회견에서 말하기도 했다. "빈 라덴은 부랑국가를 구현하고, 여성과 동성애자들을 증오하며, 무엇보다 과학을 왜곡함으로써 순수한 파괴의 쾌락을 구현했을 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어쨌든 저자의 인간관은 비극적이다. 그는 21세기를 가리켜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과학적 방법으로 구속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시대"라며 "그것은 자본주의적 인간관의 종착점"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요즘 담론의 장르인 '엽기' 모음집으로도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폭로하는 사례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을 근거로 심오한 논의와 통찰을 유도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이 책이 주는 진미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