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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21> 개안수술 지원 받아 새 눈 얻은 민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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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21> 개안수술 지원 받아 새 눈 얻은 민철이

입력
2008.09.2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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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해가 유난히 길었던 7월 22일. 김금순(53ㆍ경기 성남시 은행동)씨는 삼성서울병원 수술실 앞에서 연신 손톱을 잡아 뜯었다. 기대 반, 불안 반. 수술실 문 너머에는 태어나는 순간 김씨의 '사는 이유'가 된 막내아들 민철(11)이가 마취 상태로 누워 있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수술이 잘 될 경우 난생 처음 세상과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김씨는 "몸이 안 좋은 아이가 어떻게 든 공부해서 공무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려면 교과서는 스스로 읽을 수 있어야 했다.

민철이는 김씨가 마흔을 넘겨 얻은 금쪽 같은 아들이다. 위로 터울이 많이 나는 누나 둘이 있지만, 아들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조산이었다. 민철이는 임신 32주만에 2.15kg의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와 인큐베이터에서 삶을 시작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뇌 부위가 새까맣게 나타났다. 의사는 "살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지만,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민철이도 주변의 예상을 깨고 잘 자랐다. 그런데 목욕을 시키면 주먹 쥔 손이 풀리지 않았고 돌이 지나도 일어나 앉지 않았다. 눈동자 역시 눈 안쪽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지체장애 2급 판정이 나왔다. 그때부터 김씨는 아이의 손과 발, 눈이 되었다.

큰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모를까, 김씨는 아이를 업고 다니며 13개월 무렵부터 시작한 재활치료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장애를 고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방바닥에 아이가 좋아하는 튀밥을 일부러 휙 뿌려놓기도 했어요. 그럼 팔다리를 못쓰니까 애가 뒹굴어 다니면서 튀밥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모진 짓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운동신경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나쁜 일은 겹친다고 탄탄했던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서 유복한 전업주부였던 김씨는 자녀 셋을 둔 이혼녀가 됐다. 수입이라고는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자 수당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은 민철이가 뇌 병변으로 장애등급이 1급으로 조정되면서 각종 재활치료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8세 때는 삼성병원의 지원으로 고관절 수술도 받을 수 있었다. 전혀 벌어지지 않았던 다리가 이 수술로 다소나마 벌어지면서 민철이는 휠체어에 앉아 등교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김씨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13개월 때부터 하루 6시간씩 왼쪽 눈을 가리는 시력교정 훈련을 했고, 7세 때부터 특수안경을 꼈는데도 민철이의 내(內)사시는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글자가 부서져 보여 스스로 책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나 누나들이 읽어주는 내용을 듣고 이해해야 했다.

워낙 심한 내사시라 수술을 하더라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데다 수술비용을 마련할 길도 아득한 상태로 몇 해가 흘렀다. 아이도 지쳤는지 집에 오면 특수안경을 벗어버리며 교정 의지를 놓았을 즈음, 제일모직이 운영하는 개안수술 지원 프로그램 '하트 포 아이'가 모자의 지친 손을 잡아줬다.

"평소 민철이를 관심 있게 봐주던 소아과 선생님이 한 번 신청해보라고 귀띔을 해줬어요. 6월에 신청서를 접수하고 선정자 발표를 기다리는 데, 발표일 직전 며칠은 정말 잠을 못 잤습니다. 애가 고관절 수술하면서 너무 아파해 또 수술 받는 게 안쓰럽기도 했지만,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있구나 싶어서 발표 난 날은 눈물이 나더군요."

사시 교정수술을 받은 지 두 달 남짓, 요즘 민철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특수안경부터 찾는다. 그래야 수술 효과가 좋아진다는 소리를 들은 뒤부터 생긴 변화다. 아직 불안정하긴 해도 오른쪽 눈동자가 눈 가운데로 많이 돌아왔고 책도 곧잘 읽는다.

민철이는 "수술실 들어갈 땐 좀 무서웠지만 요새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지 않으니까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김씨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면 너도 다른 사람 많이 도와줘야 해, 알고 있어?" 하자, 민철이의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간다.

김씨는 민철이 수술이 끝난 뒤 치료는 물론 학습에도 공을 많이 들인다. 아침 7시면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향한다. 이어 수업이 끝나면 병원으로 직행해 재활치료를 받고 집에 오면 저녁 6시가 훌쩍 넘지만, 아이를 앉혀놓고 수학이며 국어 문제지를 들이민다. 학습 감독관은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니면서 차비 한번 타간 적 없는 속 깊은 맏딸이다.

"딸들한테 '나 죽으면 너희가 민철이 데리고 살래?'라고 아주 협박을 합니다. 딸 아이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민철이 공부를 시켜서 자기 앞가림은 하도록 해야지 싶어요. 더 욕심이 있다면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만큼 아이들이 커서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민철이가 걷는 걸 보는 건데, 그렇게 될런지…"

쉰을 넘긴 어머니는 아직도 갈 길이 바빠 보였다.

■ 제일모직 '하트 포 아이'

민철이에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되찾아준 '하트 포 아이'(Heart for Eye)는 제일모직(대표 제진훈)의 여성복 브랜드 '구호'에서 진행하는 아동 개안수술 지원 프로그램이다.

2006년 제일모직의 사회공헌활동 중 하나로 시작됐다. 의류업체답게 시각장애우들에게 패션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 목표다.

어린시절 수술 기회를 얻으면 맹인이 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데 주목, 수술비 마련이 어려운 시각장애 어린이들을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민철이는 10세를 넘길 경우 사시 교정술이 성형수술로 인정돼 보험수가를 적용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감히 수술 엄두를 못 내던 중 3회차 수혜자로 선정됐다.

하트 포 아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단순히 기업이 자금을 대는 차원에서 벗어나 구호 브랜드 이름으로 메시지 티셔츠를 제작하고, 이를 판매함으로써 기금 마련은 물론 시각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있다.

디자이너 정구호씨와 아나운서 강수정, 모델 장윤주, 탤런트 이승연,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사진작가 권영호씨 등 유명인들이 1회 때부터 직접 티셔츠 디자인에 참여해 힘을 보탠 배경이다.

지금까지 3회 동안 모두 25명의 어린이들이 개안수술을 받았고, 현재 4회차 수혜자 선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회차별 지원액은 2,000만원.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하는 '나눔이 만드는 희망세상' 캠페인도 제일모직이 자랑하는 기부문화 확산 운동이다.

2006년 창립기념일(9월 15일)을 맞아 기부문화확산 공익캠페인 선포식을 갖고 의류 및 임직원 기증 물품 1만여 점을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한 데 이어, 매년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재능기부(금전이나 물품 대신 상품진열 노하우나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재능을 기부하는 것), 희망세상 UCC 공모전 개최, 임직원이 일일 판매사원으로 나서는 바자회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밖에 사내 160개 봉사팀이 전국 76개 복지시설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역밀착형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국 시각장애인탁구대회도 매년 주최한다. 또 임직원의 95% 이상이 참여하는 '사랑의 성금' 제도를 통해 매년 1억원 가량을 사회시설에 기부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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