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영국의 세계적인 연극ㆍ뮤지컬 연출가 트레버 넌(68)이 한국에 왔다.
24일 개막한 제1회 대한민국 콘텐츠페어의 강연자로 초청받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이날 스토리텔링에 관한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앞두고 기자들과 먼저 만났다. 역시 스토리텔링의 대가답게 그는 간단한 질문 하나하나에도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충분하고도 흥미로운 답변들을 내놓았다.
한국에선 '캣츠'와 '레미제라블' 등의 오리지널 뮤지컬 연출가로 알려져 있지만 트레버 넌은 연극과 영화, 오페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는 "좋은 연출가가 되려면 '트레이드마크'를 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자신의 비결을 공개했다.
"저는 '누구누구의 스타일'로 인지되는 연출을 아주 싫어합니다. 모든 공연예술은 각각 다른 접근법과 영감, 시대 배경을 요구하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희곡을 분석, 해체하고 작가나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지요. 현대화하는 게 어울리는 작품이 있는 반면 재해석이 재앙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1964년 영국 최고 권위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합류한 그는 4년 후 극단의 최연소 예술감독이 돼 수많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후에는 내셔널시어터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그 공로로 2002년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아 '넌 경(卿)'이 됐다. 그는 그 시절을 "국립 기관은 예산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예술적 고민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을 스폰서 확보에 써야 해 무척 힘들었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고전을 주로 연출하던 그는 1981년 앤드류 로이드 웨버 작곡의 '캣츠'로 상업예술인 뮤지컬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자신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오가며 작업한 최초의 연출가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비평가들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제게 8살 때 처음 가 본 뮤직홀(스낵과 공연을 함께 제공하는 일종의 극장식당)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게 해 준 곳이죠. 누나가 미술대회에서 상으로 받은 뮤직홀 티켓 2장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어요. 이러니 제가 고전과 대중예술을 구분해 각각 다른 연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내셔널시어터 총감독에서 은퇴한 2001년 이후에도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역으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 주연의 연극 '햄릿' '갈매기'와 신작 연극 '로큰롤'을 선보이는 등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최신작은 지난 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는 이 뮤지컬에 대해 "영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혹평하는 비평가도 있었지만 관객들은 커튼콜뿐 아니라 공연 진행 중에도 일어나 박수를 칠 만큼 좋아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공간을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 거장은 50년 가까이 해 온 연출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했다. "신념과 불안 사이를 오가며 시시각각 정확한 판단을 요하는 연극ㆍ뮤지컬 연출은 마치 외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듯 아래나 주변이 아닌 정확한 목표 지점만 바라봐야 하는 일이죠."
미국의 혁신적인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소야곡'을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그는 25일 서울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캣츠'를 관람하고 26일 이한할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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