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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금융, 위기서 새 길을 찾자] <1> 벼랑 끝에 선 월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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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금융, 위기서 새 길을 찾자] <1> 벼랑 끝에 선 월스트리트

입력
2008.09.2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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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맨해튼 특유의 좁고 번잡한 이 길은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연간 수백조 달러가 움직이는 곳, 미국경제를 떠받치고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곳, 바로 21세기 금융자본주의의 중심로다.

2008년9월 월스트리트는 붕괴 직전상태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에도 끄떡 없었고, 바로 인근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킨 9ㆍ11테러마저도 견뎌냈지만, 지금 월스트리트에선 최소한의 자생력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정부의 구제금융을 산소호흡기 삼아 간신히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주택가격하락→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헤지펀드 도산→국책 모기지회사 위기→대형 금융기관 몰락'으로 이어진 월스트리트의 붕괴과정은 누구도 예측 못한 비극이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던 투자은행(IB)들이 속절없이 나가 떨어졌다. 올 초 베어스턴스를 시작으로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등 '빅5' IB 가운데 3곳이 간판을 내렸다. 7,000억달러의 부실채권 매입용 공적자금을 포함, 미국 정부가 1조달러가 넘는 구제금융 살포작전에 나섰지만 언제 누가 또다시 쓰러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과연 철옹성 같았던 월스트리트는 왜 무너졌을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월스트리트의 제국을 지탱해온 시스템들이 거꾸로 몰락의 주범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신금융자본주의)와 선진금융 기법들이다.

규제 없는 자유방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월스트리트의 무한팽창을 가능케 했다. IB와 헤지펀드, 사모펀드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기발한 투자를 통해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카지노 룰'보다도 느슨한 미국의 금융규제는 금융기관들의 과잉위험 투자를 초래했고,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충격으로 한번 둑이 무너지자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IB들이 만들어낸 파생상품, 헤지펀드의 가장 기본적 투자방식인 공매도는 그 동안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선진금융기법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러나 주택가격 하락이 주식시장폭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금융기관 도산으로까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이 파생상품과 공매도는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담보자산 같은 비유동성 자산을 거래할 수 있도록 바꾸는 기법인 '증권화' 역시 월스트리트에 유동성을 넘치게 해준 선진금융 기법이었지만, 이젠 화를 자초한 공범으로 지목 당하고 있다.

작은 정부와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하던 공화당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민영화된 국책 모기지업체를 다시 국유화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미 재무부가 7,000억달러 규모 공적자금으로 모기지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계획을 발표하자 "마지노선을 넘은 미국이 30년간 주창해온 신자유주의를 스스로 내던진 날"이라고 평가했다.

"30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던 규제 완화가 강화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비즈니스위크) "80년대 이후 규제는 약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하던 미국 정부가 적극적 행동주의로 복귀했다"(월스트리트저널)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관심은 '포스트 월스트리트'다. 과연 IB는 어떤 모습이 될지, '규제 받는' 파생상품은 어떤 내용을 담을 지가 관건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월스트리트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다고 전면적 규제시대, 전면적 보호시대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로에 서있는 한국의 금융산업 역시 얼마나 그 변화상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

■ 월街 '돌아온 탕자' 신세

'경제의 혈맥'인 금융에는 늘 깐깐한 규제가 뒤따른다. 하지만 감시만 강조한다면 활력은 잃게 마련. 월스트리트 역시 지난 100년간 중대 위기들을 고비로 규제 완화와 강화를 반복해 왔다.

첫 분수령은 1930년대 대공황. 금융사들의 줄도산으로 패닉을 경험한 미국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 법을 제정,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업종간 칸막이를 확실히 쳤다. 특히 고객 예금을 가진 상업은행이 리스크가 높은 투자은행 업무를 하지 못하게 했다.

반세기 넘게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온 글래스-스티걸 법에 변화가 온 것은 1980년 '레이거노믹스'의 등장. 레이건 대통령은 '작은 정부,큰 시장'과 '탈(脫)규제,무(無)국경'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했고, 규제를 벗어 던진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감독을 받지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급성장했다.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차입자금을 첨단 금융상품에 투자해 천문학적 수익을 거뒀고,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미국의 글로벌 달러파워를 지탱해줬다. 저축대부조합 사태나 롱텀캐피탈 파산사태 등을 계기로 간간이 규제 강화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이내 묻히고 말았다.

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은 금융 규제를 더 풀었다. 유럽의 은행 겸업화 추세에 뒤쳐지고 있다는 비판에 99년 '그램 리치 브릴리'법을 만들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일부 겸업하도록 허용했다. '금융 백화점'이라고까지 불리는 씨티그룹도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대공황 이래 최대위기를 맞은 월스트리트는 요즘 오히려 규제와 정부개입을 애원하고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미국 금융은 다시 '규제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 위험 파생시킨 파생금융시장 50兆달러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AAA등급의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채권(CDO)에 투자했다가 지난해에만 120억달러를 날렸다. 굴지의 신용평가사가 최상위 등급을 매긴 만큼 이보다 더 안전한 상품은 없다고 믿었지만, 결과적으론 '폭탄상자'였던 셈이다.

UBS뿐 아니다. 승승장구하다 이젠 문 닫을 운명에 처한 리먼브러더스는 자산유동화증권(ABS)과 CDO, 세계 최대 보험그룹 AIG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식으로 이름과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파생상품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 파생상품의 뿌리는 모두 우리의 주택담보대출과 비슷한 미국의 모기지 대출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라는 비교적 낮은 신용등급의 대출 채권을 담보로 미국의 금융사들은 수백에서 수천가지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대출을 내 준 모기지 회사는 이를 묶어 주택저당채권(MBS)으로 팔고, IB들은 이를 다시 CDO로 만들어 헤지펀드나 다른 IB에게 파는 식이다.

여기에는 수학ㆍ통계학 이론이 버무려진 최신 금융공학이 동원됐다. 이들은 신기술로 위험을 분산해 '리스크 제로' 상품을 탄생시켰다고 환호했다. 신용평가사들은 내용도 정확히 모르는 상품에 '우량' 도장을 쾅쾅 찍어줬다.

하지만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상품이 있을까. 위험을 무수히 쪼개긴 했지만, 근본자산(서브프라임 모기지)이 부실화 되면 결국 모두의 위험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UBS는 올 4월 보고서에서 "소수 전문가를 빼고는 회사 최고위층마저 위험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 정도면 부실을 예방해야 할 감독당국 역시 알았을 리 만무했다는 얘기다.

파생금융상품이 등장한 것은 불과 20여년전. 각종 금융거래상에 수반되는 위험을 회피(헤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 선의의 첨단금융상품은 이제 통제불능의, 스스로 위험덩어리의 '괴물'이 되어버렸다.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수한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 투자자는 자기가 가진 파생상품의 근본 리스크(원 채무자)를 알기가 불가능해진다. 근본을 모르니 부실이 얼마나 더 생길지도 모르는 상태다. 현재 월가의 파생시장 규모는 대략 50조달러. 미국 정부의 7,000억달러 구제자금이 충분할 지에 의문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진주 기자 김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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