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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클린턴, 오바마도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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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클린턴, 오바마도 좌파?

입력
2008.09.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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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다. 인류의 심장 역시 왼쪽, 즉 좌파에 있다." 유럽 좌파들이 자주 써먹는 문구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공간의 이념갈등과 이후 나타난 극단적인 반공체제에 의해 '좌파'라는 단어는 금기시되었다. 진보세력 스스로 좌파라고 부르기를 꺼려했고 언론 등도 특정세력을 좌파라고 부를 경우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를 상대방에서 새기는 것이기에 이를 자제해 왔다. 대신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좌파라는 단어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냉전세력들이 국민들 가슴 속 깊이 내재하는 좌파혐오주의를 건드려 민심을 되찾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에서 좌파와 거리가 먼 이들 정부까지도 좌파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이 같은 좌파라는 단어의 남용에 대해 KBS가 특집보도를 하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김대중ㆍ노무현 정부가 좌파라니

특히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진보ㆍ보수보다는 좌파, 우파가 더 정확한 말이고 또 중립적인 말"이라며 좌파라는 말 속에 역사적 짐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 어두운 모습이 벗겨져 "최근 10년 동안 좌파는 국민들의 선택에 의하여 집권했을 정도로 정당성을 획득"한 만큼 진보세력에 대해 좌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우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현실에 대한 박 교수의 무감각이다. 박 교수가 문제의 글을 쓰기 바로 며칠 전 한국경영학회장까지 지낸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를 포함한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사노련)이라는 진보단체, 즉 반북적이고 공개활동을 해온 공개적인 진보단체가 사회주의를 내걸고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오 교 수가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좌파가 이제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진보세력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좌파가 무엇이고, 우파가 무엇인가에 대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박 교수와 냉전세력의 용법이다. 좌파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사회주의, 공산주의처럼 최소한 사회민주주의보다 더 좌측에 있는 사상을 지칭한다. 이제는 상당히 우경화해서 그렇게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프랑스의 사회당과 공산당은 좌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좌파 혐오증과 좌파사상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라는 문제점이 있지만 오 교수와 사노련은 좌파라고 부를 수 있다. 또 논쟁이 가능하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넓은 의미에서 좌파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국제적 기준으로 중도우파에 가까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좌파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박 교수가 미국에서 공부를 한 만큼 잘 알겠지만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해서 민주당을, 그리고 클린턴 정부와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한국이나 미국처럼 보수양당제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보수정당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냉전세력의 색맹증상이 문제

미국의 민주당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다르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정책 중 사회민주주의 내지 그 이상이라서 좌파라고 부를 정책이 무엇인가? 햇볕정책? 그러면 햇볕정책의 원조인 클린턴 정부(페리보고서)도 좌파인가? 국가보안법 폐지? 그러면 이를 권유한 국제연합(UN)이 좌파인가? 부동산세 인상? 그러면 한국보다 더 높은 부동산세를 걷는 부시 정부가 좌파인가? 경제 규제? 그러면 박정희가 좌파인가? 복지정책? 그러면 1997년 환란 당시 구조조정과 관련해 사회적 안전망 확대를 요구한 국제통화기금(IMF)이 좌파인가?

결국 문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같은 중도우파까지도 좌파로 보이는 한국 냉전세력의 색맹증상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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