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詩로 여는 아침]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詩로 여는 아침]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

입력
2008.09.24 00:17
0 0

울라브 H 하우게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

무엇보다, 전망을 가렸으므로,

여름이면 거실은 따분했다,

게다가 도매상들은

더 이상 그런 종류의 사과를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뭐라 하셨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버진

그 사과나무를 아끼셨다.

그래도 난 그걸 베어버렸다.

한결 밝아졌다,

피오르드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이웃들이 뭘하는지 더 잘 지켜볼 수 있었다.

집은 이제 전망이 툭 트이고

자신을 더 많이 드러내보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사과나무가 그립다.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나무는 좋은 쉼터였고

좋은 그늘이었고, 가지 사이로 태양이

탁자를 훔쳐보았고, 밤이면 자주 누워

가볍게 흔들리는 잎사귀에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그 사과들-

봄이면 상큼한 맛이 비할 데 없었다.

둥치를 볼 적마다 마음이 아프다. 물러지면

패어 장작으로 만들어야겠다.

노르웨이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자국의 시인 중 국내에 꼭 소개하고 싶은 시인이 있다며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시인과 함께 대사관저를 방문했다. 과연 어떤 시인이길래 공무에 바쁜 대사까지 직접 나서게 된 것일까. 호기심이 동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시의 번역은 원래 반역’이라고 하질 않던가.

그러나, 피오르드가 보이는 언덕에서 평생을 정원사로 일하며 살았다는 시인의 사과나무를 만난 순간, 이미 사라진 나무가 내 안에서 수런거리며 살아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상통을 앓듯 사과나무를 자신의 일부로 기억할 줄 아는 시인의 마음이 아마도 경계와 경계를 넘어 여기까지 온 것이리라. 한 시인을 소개함으로써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 그 웅숭깊은 외교술이 참으로 그윽하다.

손택수ㆍ시인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