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재동초등학교 뒤에 낙고재라는 아담한 한옥이 있다. 요즘 여기서는 매일 국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한옥과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문화단체 아름지기와 국악음반사 악당이반이 마련한 일주일 간의 산조 축제 '젊은 산조 젊은 가락 Ⅱ'가 그것이다.
흐린 날씨에 하늘이 낮게 내려 앉은 22일 오후, 이 집은 거문고 풍류방이 되었다. 거문고 연주자 최영훈씨와 장고 반주를 맡은 남상일씨는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고, 30여명의 손님들은 방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영산회상 중 '밑도드리'로 시작해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한바탕을 탔다. 느린 진양조로 시작한 산조가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점차 장단이 빨라지자 흥이 오르는지 자연스레 추임새가 터졌다.
관객 바로 코 앞이라 연주자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들리고, 줄 긁는 소리 스르렁, 줄 고르며 미는 소리 찌꺽, 가죽을 댄 거문고 머리 나무판에 탁탁 술대 내려치는 소리까지 귀에 착 달라붙었다.
보고 듣는 맛이 무대와 객석이 딱 갈라진 여느 공연장의 딱딱한 느낌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날 공연은 자리를 파하기가 아쉬워 북한의 거문고 명곡 '출강'을 더 연주하고 흥에 겨워 출연자와 관객들이 다함께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끝났다.
옛 사람들의 풍류가 이랬을 것이다. 사랑방에 모여 저마다 악기 하나씩 잡고 연주하고 감상하고 시도 한 수 읊는 그런 자리.
대청마루를 기분좋게 울리는 거문고 소리는 걷어올린 장지문 너머로 사뿐히 날고, 그 소리에 취한 듯 마당에서는 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춤추고, 골목에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별로 성가실 것 없이 여유롭게 어울렸다.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풍류를 즐기는 건 분명 호사다.
국악 공연은 처음 본다는 진정임(42)씨는 "첼로나 바이올린 소리만 듣다가 거문고의 깊은 울림을 들으니 참 좋다"며 "우리 문화를 너무 몰랐다는 반성과 함께 국악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진씨는 다음엔 아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거문고를 탄 최영훈씨는 "거문고 소리가 나무 바닥에 울려 나오니 악기가 100% 제 목소리를 낸다"며 "한옥은 우리 악기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고 했다.
장구 반주를 한 남상일씨도 한옥 공연은 꾸미지 않고 격식이 없어 좋다"며 "우리 음악은 이렇게 아담한 데서 해야 맛이 난다"고 했다.
낙고재의 산조 축제는 24일 강은일의 한범수류 해금산조, 25일 이용구의 이생강류 대금산조, 26일 이석주의 박범훈류 피리산조, 27일 윤서경의 윤윤석류 아쟁산조로 이어진다. 문의 (02)733-8374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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