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본(경험한) 적이 없는데 본(경험한) 듯하게 느껴지는 현상'이 있다. 데자뷰(Dejà vu) 또는 기시감(旣視感)이라 불리는데,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등장할 뿐 아니라 경제나 시장 분석에도 용이하게 쓰인다.
최근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공적자금(7,000억달러 규모) 투입이 우리 증시에 '데자뷰'를 초대했다. '신자유주의의 후퇴' '미국식 금융 구조조정'이라는 거창한 수사(修辭)보다 투자자의 관심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데 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증시 전문가들이 말하는 '데자뷰 1998'의 근거는 미국의 유례없는 금융 구조조정이 우리가 이미 겪은 바 있는 외환위기 직후의 금융 구조조정과 유사하다는 것. 위기를 가져온 원인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금융위기는 부실 금융기관의 존재로 인한 신뢰(credit)의 위기이자, 금융 시스템의 붕괴 우려라는 것이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100년 만에 다가온 금융위기라고 했지만 한국인들은 지난 10여년간 금융 시스템의 전면적 붕괴와 재건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점은 증시의 움직임이다. 지난 주 후반 미 정부의 전면적 시장 개입이 선언되자 뉴욕 증시는 4%대로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부실 금융기관의 처리와 관련해 의미 있는 정책적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 흐름을 속단할 순 없지만 최소한 단기 'V'자형 랠리(급하락 후 급반등)는 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시 IMF체제 돌입 직후인 98년1월 강한 반등세가 나타났다. IMF의 자금지원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시점이기도 하다. 당시 국내 증시는 역사상 가장 강한 베어마켓랠리(약세장 반등)를 기록했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61.4%나 올랐다.
현재 상황을 대입하면 당분간 우리 증시도 미국처럼 오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김학균 수석연구원은 "장기 투자이건, 단기 투자이건 앞으로 2~3개월의 장세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며 "일단 반등을 즐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근본문제 해결의 키(key)를 쥔 3가지 변수를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린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사실은 조연이라는 점이다.
주연은 주택경기인데, 만약 미국의 주택 가격이 계속 떨어지면 금융권 부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지형 한양증권 연구원은 "91년 이후 최저로 내려앉은 신규 주택착공건수(8월)에서 보듯 미국 주택경기는 여전히 침체돼 있고 우리 역시 신용경색으로 부동산 등 실물부문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도 심상치 않다. 국채 발행을 통한 미 정부의 구제금융 재원 마련책은 이자비용을 키워 안 그래도 막대한 재정수지 적자에 신음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숨통을 죌 수 있다.
더구나 유동성 추가 공급은 인플레를 다시 들썩이게 할 수 있다. 미 정부 발표 이후 배럴당 100달러 위로 올라선 국제 유가가 대표적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증시엔 즉각적인 찬물이나 다름없다.
3가지 변수는 근본(부동산 가격), 당장(원자재 가격), 중장기 이슈(미국 재정)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 데자뷰에 딸린 안도랠리를 즐기기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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