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5시10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E 게이트 앞. 남편 김재근(48)씨 옆에 꼭 붙어 앉은 베트남 새댁 파티뿌응(32)씨는 비행기 도착을 알리는 모니터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부부가 앉은 벤치 옆에는 꽃다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파티뿌응씨는 "2006년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와 오빠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부부는 전날 밤 충북 영동에서 올라와 이날 새벽 1시부터 공항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샜지만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지나자 남편의 손을 꼭 잡거나 아이를 품에 안은 결혼이주여성들이 게이트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안고 한국에 시집 온 19명의 이주여성들에게 이날은 특별했다.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부모, 형제가 한국을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베트남 출신 12명, 필리핀 6명, 대만 1명 등 이주여성 19명의 친정 식구들을 초청했다. 총 38명의 가족이 딸을 만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는데, 대부분이 첫 외국 여행이었다.
오전 5시17분. 드디어 하노이 발 항공기가 도착했다. 그러나 입국절차 지연으로 가족들은 오전 6시40분께야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문이 수십 번 열리고 닫히는 걸 속절없이 바라보던 이주여성들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다.
"얘들야, 할아버지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하고 배꼽 인사!" 충북 충주에서 온 황티풩(한국명 황은아ㆍ27)씨는 5년 만에 처음 만난 아버지 황반둥(49)씨에게 딸 예진(5)과 아들 동진(3)을 인사시키기에 바빴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 보는 외할아버지가 낯설어서인지 고개만 까닥 숙이고 말았지만, 황반둥씨는 외손자 동진을 덥석 안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베트남 남부 소도시 까마우 출신인 탁짤다(28)씨는 부모님을 만나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까마우에서 버스로 10시간을 달려 호치민에 도착, 다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이역만리 한국을 찾은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남편 임용규(44ㆍ충북 청주)씨는 슬리퍼를 신고 있는 동갑내기 장인 탁녹폰(44)씨와 장모 호사우이(43)씨에게 미리 준비한 새 구두부터 신겨 드렸다. 호사우이씨는 "딸이 임신 3개월째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게 돼 너무 좋다"며 딸의 두 손을 감쌌다.
다른 항공편으로 오전 7시께 필리핀 마닐라에서 도착한 콘라도(70)씨와 로리타(73ㆍ여)씨 부부에겐 한국은 특별한 나라다. 두 딸 모두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살고 있다.
큰 사위 민영기(46)씨는 "2001년 아내 바벳과 결혼한 지 1년 만에 처제가 한국인과 결혼했다"며 "청주에 있는 우리 집과 대전의 처제 집을 오가며 장인, 장모께 즐거운 시간을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관광 길에 오른 가족들을 태운 버스 안은 가슴에 쌓아둔 정을 나누고 한국 방문에 함께하지 못한 가족, 친지들의 소식을 주고 받는 이국의 언어로 왁자했다.
생후 8개월 된 손자 호준이를 위해 베트남에서 커다란 장난감을 사들고 온 트룽티탐티(43ㆍ여)씨는 "사진으로만 보던 손자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다"고 감격해 했다.
황텐전(46)씨도 9개월 된 손자 상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청와대와 경복궁, 남산타워 등 이국의 낯선 풍광도 이들에게는 손주들 재롱 보는 재미보다 못한 듯 했다.
이들은 협의회가 마련한 2박3일간의 서울 관광을 마친 뒤 딸 가족의 보금자리를 찾아 열흘간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황티풩씨의 남편 임재혁(37)씨는 "장인, 장모님을 초대하고 싶어도 복잡한 절차 때문에 어려웠는데 이런 기회를 마련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계시는 동안 원 없이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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