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랜드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air)는 2007년부터 항공권을 공짜로 나눠주는 마케팅 행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작년 5월 100만석 무료행사를 시작으로 올해 9월에도 항공권 0파운드(세금 10파운드 별도) 행사를 진행했다. 라이언에어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올리어리는 "가까운 미래에는 승객 중 절반 이상이 무료로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라이언에어는 공짜 항공권을 뿌리면서도 10%대 중반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는 것.
#. 일본 대학가에서는 공짜 복사 서비스가 좋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게이오대학 학생들이 2006년 4월 설립한 타다카피(Tadacopy)는 대기업이나 학교 근처 사업자들에게 스폰서를 받아 복사용지 뒷면에 광고를 싣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공짜로 복사하니 좋고, 광고주들은 광고지를 학생들이 오래 간직하니 좋아한다. 이 사업은 높은 수익률을 거두면서 2년 만에 44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프리코노믹스(공짜경제)'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공짜 항공티켓이나 복자용지 말고도 미디어나 콘텐츠, 유무선 통신, 나아가 냉장고나 자동차까지 무료로 제공하는 기업들이 전세계적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3일 이런 현상에 대해 "가격파괴 시대를 넘어 본격적인 '공짜경제'(Freeconomics= Free+Economics)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짜경제란 단순히 사은행사나 자선을 뜻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다. 과거 유료였던 상품을 공짜로 줌으로써,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사업방식인 것이다. 롱테일 경제학의 주창자인 크리스 앤더슨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를 통해 '2008년 새로운 경영트렌드'로 이런 프리코노믹스 현상을 처음 제시했다.
독일의 보쉬와 지멘스가 공동 설립한 보쉬-지멘스가 7월 시작한 기상천외한 사업을 보면 공짜경제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전력회사를 통해 고효율 신형 냉장고를 빈민촌 주민에게 공짜로 나눠줬다. 대신 전기를 많이 먹는 구형 냉장고를 회수해갔다. 이 거래만 보면 수익사업이라기보다 사회공헌활동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쉬-지멘스가 돈을 버는 방법은 바로 구형 냉장고에 숨어있다. 구형냉장고에서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냉매(HFC)를 회수해 처리하면 회사는 탄소배출권을 받게 된다. 이를 거래소에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명성은 덤으로 얻는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전력회사는 전력수요를 줄여 추가로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누리게 된다.
심지어 2011년께에는 자동차를 공짜로 나눠주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벤처기업인 베터플레이스는 이스라엘에서 무료 전기 자동차 보급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치 통신회사가 휴대폰을 공짜로 주고 통화요금에서 수익을 내는 것처럼 이 회사는 전기 자동차를 무료로 소비자에게 주고, 주행거리에 따라 사용료를 받을 계획이다.
개발된 지 20년이 지난 전기자동차가 여태 보급되지 못한 이유는 너무 비싼 자동차 배터리(약1만2,000달러) 때문. 그러나 이 사업방식을 통하면 소비자는 초기 차량구입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회사는 회사대로 단기간에 규모의 경제를 통한 사용료 수익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공짜경제가 주목받는 것일까. 물론 원래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의 본원적 속성, 급격한 기술변화로 인한 상품주기의 단축 등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기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글로벌 경기 탓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나준호 박사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20, 30대의 구매력이 크게 약화된 것이 공짜경제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으며 공짜사업 중 상당수가 이들을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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