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는 투자신탁회사의 줄도산으로 패닉 상태가 고조됐다. 예금자들은 투신사가 문을 열자마자 돈을 인출하기 바빴다. 부도 위기에 몰린 금융회사 사람들과 자신의 예금이 하루 아침에 허공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이 월 스트리트 23번지 '더 코너'에 몰려왔다. 더 코너는 JP모건 건물이 있는 곳으로, 이곳 2층에 금융계 황제 존 피어폰트 모건의 집무실이 있었다. 그는 금융 위기에서 예금자들의 재산을 건져내 지켜줄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1907년 10월 23일의 상황이다.
▦당시 월 가의 패닉은 투기 광풍이 불던 구리ㆍ광산 주가가 추락하면서 주식을 매집한 투신사들이 잇따라 파산한데 불안을 느낀 예금주들이 창구에 몰리면서 비롯됐다. 이튿날 증권거래소 거래마저 사실상 중단되자 랜섬 토마스 회장이 황급히 모건을 찾아왔다. 그는 2,500만 달러를 지원하지 않으면 50개 증권사가 문을 닫고 거래소도 휴장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말을 들은 모건은 오후 2시 은행장들을 소집한 지 16분만에 필요한 자금을 조성해 증권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존 피어폰트 모건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JP 모건을 최고의 은행으로 키우면서 월 가의 나폴레옹으로 군림했다. 패닉 때마다 금융회사들을 막후에서 조정해 수습하고, 금 유출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미국의 금본위제도를 사수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913년 출범할 때까지 중앙은행 총재 노릇까지 한 셈이다. 모건 제국은 장남 잭 모건이 승계하면서 1935년 투자은행부문(IB)을 모건 스탠리로 분리하는 등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여ㆍ수신 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글래스-스티걸 법에 따라 모건 하우스가 둘로 나눠진 것이다.
▦모건 스탠리는 JP 모건의 고객이었던 AT&T 등 최상위 기업과 석유 메이저를 고객으로 거느리면서 1980년 대까지 증권 인수 및 유통 분야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면 모건 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IB 업계의 신화였던 모건 스탠리가 골드만 삭스와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덫에 걸려 먹이감으로 전락한 것은 투기와 탐욕에 눈먼 IB들에 조종(弔鐘)을 울린 사건이다. 반면 막강한 예금력을 바탕으로 거대 상업은행으로 발돋움한 JP 모건(현 JP 모건체이스)은 베어스턴스 등 IB의 시신을 거둬 덩치를 키우고 있다. 한 배를 탔던 옛 모건 제국 형제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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