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규 지음/나무의숲 발행ㆍ212쪽ㆍ1만1,000원
남보다 풀을 더 뜯어먹기 위해 아우성을 치고, 중재ㆍ타협ㆍ협상을 통해 풀 뜯어먹는 구역을 배분하고, 잔꾀와 재주를 부려 이득을 취하고, 아부와 아첨으로 곁이익을 취하기도 하고, 어린 양을 앞세워 잇속을 채우고.
순함과 착함과 약함의 상징인 동물 양. 하지만 만일 양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면? 화가이자 엽편소설 작가인 김의규(53)씨는 이런 우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현실을 풍자한다. 길라잡이양, 잘산양, 일등양, 홀로양, 날뜀양 등의 개성 넘치는 이름이 붙은 50편의 짧은 소설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특징을 그럴싸하게 포착한다.
책은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촌철살인의 풍자, 아름다운 삽화 등 잘 읽히는 엽편소설의 3박자를 두루 갖췄다. 홀쭉이양을 만나기만 하면 아웅다웅 다투지만 막상 홀쭉이양이 자신의 몸에 깔려 죽자 불안감에 빠지는 뚱뚱이양의 이야기에서 '공존공생'에 대한 메시지가 읽히고, 들소를 메칠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지만 더 강한 상대를 찾기 위해 헤매다 최후를 맞는 영웅양의 우화에서는 '권력의지의 덧없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허허… 양들의 양심(羊心) 하구선, 쯧쯧…" "그렇게 두 편으로 나뉜 양들이 동서로 갈라서니 한 무리는 서양(西羊), 또 한 무리는 동양(東羊)이라 이름 하였다" "흰빛의 양은 깨끗한 양하지만 맹수의 눈에 잘 띄는데다 약해보이고 목욕을 자주 하는…" 같은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작가의 말놀이, 말부림의 재치 또한 무릎을 치게 한다.
김씨는 성공회대 디지털컨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엽편소설을 쓰기 위해 2004년 강단을 떠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인격의 다름이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작가다. 토끼, 호랑이를 소재로 한 또다른 엽편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의 부인은 작고한 시인 구상(1919~2004)의 딸인 소설가 구자명(51)씨.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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