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가을은 평범하면서도 굉장히 개인적인 경험을 남깁니다. 여기에 음악은 경험을 기억과 추억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하죠. 가을의 한 장면을 단지 경험의 방에 저장하느냐, 아니면 추억의 공간에 보관하느냐는 함께 했던 음악이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을은 음악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엔터'는 뮤지션, 혹은 음악관련 종사자 8명에게 물어본 '가을에 꼭 듣고 싶은 음악 3선'으로 꾸며봤습니다. 그들의 남모르는 가을과 추억, 그 사이에 놓인 음악들을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 혹은 CD장에 저장해 보세요. 누구나 부러워 할 콜렉션을 담아보세요.
전제덕
● 하모니카 연주자
가을은 쓸쓸함보다 맑은 이미지가 강하다. 투명하고 맑은 가을의 이미지를 담뿍 담은 이문세 4집의 '가을이 오면'을 첫번째로 꼽는다.
두번째 곡은 1973년에 발표된 카펜터즈의 앨범 '나우 앤 덴'에 실린 '예스터데이 원스 모아'. 문득 낡은 사진첩을 펼치듯 오래된 추억과 만나는 경험을 전해준다. 조용하고 여유있는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시를 읽듯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빌 에반스의 '타임 투 리멤버'를 끝으로 권한다.
최효민
● 음악 칼럼니스트
가을이 오면 국악 우조 시조 '월정명'을 듣고 싶다. " 월정명 월정명커늘 배를 저어 추강에 나니/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가운데 명월이라/선동아 잠긴 달 건져라 완월하려 하노라." 가사가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간결하고 담백하면서 톤이 밝고 화사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노래다.
이준아씨가 노래한 시조 음반 '옛시, 그 향기 속으로'를 권한다. 홍성지 작곡 미사곡 '루멘데 루미네'('빛으로부터의 빛')는 간결하고도 기품있는 서정적인 곡. 현대음악이면서도 서양 중세음악과 한국 전통음악 패턴을 고루 느낄 수 있다.
여성 아카펠라 '트리오 메디에발'의 음반 '스텔라 마리스'(ECM)에 들어 있다. 프랑스 작곡가 쇼숑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곡'(詩曲)이 지닌 서늘한 아름다움도 가을에 잘 어울린다.
이주한
● 트럼페터ㆍ윈터플레이 멤버
로맨스의 계절 가을을 위한 첫번째 선택은 당연히 에타 제임스의 '앳 라스트'. 배경으로 깔리는 스트링이 아름다운 발라드곡으로 60년대 로맨틱 무드로 사로잡는다. 4인조 로큰롤 그룹 포시즌스의 프랭키 발리가 부른 '마이 아이즈 어도어드 유'는 슬프지만 어린 시절의 희망을 담아 가을에 듣기 좋다.
다음으로는 재즈 보컬리스트 토니 드자레의 2005년 앨범 '원트 유'에 담긴 '베이비, 드림 유어 드림'. 미디움 템포의 재즈 스윙곡으로 청명한 가을하늘아래 한잔의 레드와인과 함께 하면 딱이다.
요조
● 가수
'기억하니 9월 21일의 밤을'로 시작하는 9월의 음악을 들어보자. 어쓰, 윈드 & 파이어의 명곡 셉템버와는 또 다른 부드러움으로 다가오는 일본 가수 도키 아사코의 '셉템버'. 2005년 앨범 '스탠다드'에 담겨있다.
정신 없는 시절은 뒤에 있다는 메시지를 생각해보려면 에브리싱 벗 더 걸의 '롤러코스터'가 좋다. 제목과 달리 곡은 잔잔하며 어쿠스틱하다. 영국 그룹 인코그니토의 2006년 앨범 '비즈, 씽즈, 플라워즈'의 첫곡 '에브리바디 러브즈 더 선샤인'은 가을의 햇살을 사랑하라 속삭인다.
최은규
● 음악칼럼니스트
예전에 연애편지 쓸 때 배경으로 틀던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로 꼽히는 음악이다.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한 런던필 실황반을 좋아한다. 불치병으로 요절한 여성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가 연주한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심장을 활로 긋는 듯한 느낌이다.
뒤프레가 남편인 지휘자 바렌보임, 런던필과 함께 녹음한 음반(사진)이 있다. 센티멘탈해질 때 들으면 오히려 가슴이 후련해진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의 3악장은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시원해 들으면 명랑해진다.
임진모
● 음악평론가ㆍ상상마당 홍보디렉터
가을은 편지의 계절이다. 그냥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가을.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편지를 쓰고픈 마음을 담은, 1970년 최양숙이 앨범 '기다리겠어요'에 실었던 '가을편지'를 권한다.
고등학교 시절 듣고 실제로 바람과 얘기하게 만들었던 킹 크림슨의 1969년 앨범 '인 더 코트 오브 크림슨 킹'의 '아이 토크 투 더 윈드'는 신비로운 사색을 몰고 온다. 스팅의 노래는 그야말로 가을 자체이다. '프리자일'로 유명한 스팅의 앨범 '낫싱 라이크 더 선' 곡 모두가 독서의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최적이다.
송기철
● 음악평론가ㆍ음반사 케이비트 대표
사람들의 깊어지는 눈망울만큼이나 가을엔 음악의 감동도 배가된다. 플뤼겔 호른의 마술사 척 맨지오니의 '칠드런 오브 산체스' 앨범은 가을에 빼놓을 수 없다.
수록곡 중 'Consuelo's Love theme'는 그중 백미. '대륙의 목소리'로 불리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베스트 摹換?가을의 길동무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영화 '정사'로 알려진 그의 곡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등 명곡이 즐비하다. 그룹 동물원의 3집 중 '가을은'은 도시인의 호흡에 한 박자 휴식을 전해준다.
조윤범
● 바이올리니스트ㆍ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브람스의 바이올린소나타 1번 '비의 노래.'아주 차분하면서도 날아가는듯 상쾌한 곡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이 또 있을까.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2번의 2악장. 쇼팽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바치려고 썼다가 그 여자가 딴 사람과 결혼하는 바람에 딴 여자에게 준 곡이다.
이런 음악을 받고도 안 넘어갈 여자가 있을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아주 느린데, 계속 클라이맥스를 향해 올라가다 다시 내려가 조용히 끝나는 이 곡은 듣는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간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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