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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판 메릴린치'를 지향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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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판 메릴린치'를 지향하기 전에

입력
2008.09.1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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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금융권의 꿈은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미국형 투자은행(IB)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예대금리차에 의존하는 상업은행을 넘어 유가증권 거래 중개나 자산운용, 기업 인수합병(M&A) 주선 등의 수익성 높은 사업을 영위하며 사실상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자산시장 통합법을 만들면서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의 출현을 지향한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것도 20세기에 만개한 구미의 금융자본주의 모델이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담보한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사실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는 이름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느껴졌고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곧 뉴스였고 거기엔 100년 안팎을 이어온 대단한 비법과 기술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믿음이 허구의 신화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허상을 단정적으로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세계적 투자은행의 명성이 결국 '돈으로 불장난하는 금융공학 신봉자들의 도박'으로 얻은 것이고, 미국 정부는 이들의 도덕적 해이와 탐욕을 방치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테러로 촉발된 뉴욕 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어제 미국 정부가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무려 850억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소식에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번 사태의 진정한 원인은 일시적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신용체계 혹은 신뢰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은 부실한 모기지 대출채권이라도 초첨단 금융기법인 파생상품으로 포장하면 위험을 제로로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이다.

이제 그 환상은 깨졌다. '언젠가 터질 폭탄은 언젠가 터진다'는 철칙도 입증됐다. 폭탄으로 부서진 시장은 조만간 복구될 것이고 어지러운 잔해도 수습될 것이다. IB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이번 사태에서 잃은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다. 돈을 만지는 금융의 끊임없는 자기팽창 요구를 견제할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교훈이 첫째이고, 둘째는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자본의 잘못은 늘 납세자들의 천문학적 부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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