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어떤 바둑대회에 나가서 판화 한 점을 상으로 받았다. 일등은 고사하고 삼등 안에도 못 들었는데 받은 상이다. 그날 나는 주제를 모르고 상급조에 출전했다가 노익장 네 분에게 지기만 했다. 4전 4패. 열없어서 기가 팍 죽어 있는데, 전패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 말고 전패를 하신 분이 세 명이 더 있었다. 주최측은 다 줄 수는 없고 한 사람만 줄 작정이라고 했다.
나이가 가장 많은 분에게. 여기서 또 한 번의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전패자 세 분이 나보다 더 부끄러웠던지 모두 대회장을 떠나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사실 나도 안 받고 싶었다. 전패상이라니. 하지만 모두가 나만 쳐다봐서 받으러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이라는 게 참 묘했다. 받으니 참 좋은 것이었다.
너무 좋아서 얼떨결에 세리머니까지 했다. 물론 내가 그런 창피한 상을 받고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 1승이라도 거둔 분들이 하찮은 꼴찌에게 진정 어린 박수와 축하를 열렬히 보내주었기 때문이리라. 주최측은 그밖에도 전패상 만큼이나 웃기는 이름을 붙인 상을 여러 개 수여, 등위 밖 참가자들을 배려했다. 이런 대회가 많을수록 우리 주변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등수를 가리되, 등위 밖 참가자들도 유쾌하게 배려해주는.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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