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다', '빙빙 돈다', '어지럽다'.
어지럼증은 두통이나 소화불량 등과 함께 가장 흔히 겪는 신체 이상 증상의 하나다. 하지만 원인이 워낙 다양해 증상만으로는 그 원인을 알아내기 힘들다. 어지럽게 만드는 원인으로는 평형기관질환과 뇌질환, 심장질환, 정신질환, 노화, 혈액질환, 약물중독 등이 있다.
■ 평형기관 장애- 여성이 2배 이상
평형기관 장애로 인한 어지럼증은 귓속 달팽이관 앞에 있는 평형기관인 세반고리반과 이석기관이 각종 염증과 구조적 이상 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생긴다. 어지러움이 격심하지만 해당 부위에 별다른 통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기 쉬워 초기 진단이 어렵다.
이들 평형기관의 문제로 어지러우면 우선 자세가 불안정해 걷기 힘들고 구역질과 구토, 귓속 이물감을 유발하고 심하면 청력을 잃을 수 있다.
이들 어지럼증은 비디오안진검사와 회전의자검사, 자세검사 등 각종 귀 평형기능검사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통해 원인 규명을 먼저 해야 한다. 진단 결과 귓속 평형기관 이상이면 상태에 따라 약물요법과 물리치료, 수술 순으로 진행한다. 초기에는 약물요법으로도 증세가 상당히 호전된다.
특히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증상이 2~3주 이상 지속되지 않으면 귓속 평형기관 이상으로 인한 어지럼증일 가능성이 높다.
귓속 평형기관은 기능을 한번 잃으면 복원되지 않으므로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되도록 피하고, 과음과 흡연을 삼가고, 너무 짜고 단 음식을 피해야 한다.
메니에르증후군에 걸려도 어지럽다. 이 병은 달팽이관과 세반고리관의 림프액 압력이 크게 증가해 어지럼증, 난청, 이명 등을 일으킨다. 이 경우 한번 어지러우면 30분 이상 증상이 지속된다.
메니에르증후군은 내분비ㆍ자율신경계의 혈관 운동성에 이상이 생겼거나 유전적 요소와 관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금을 적게 먹는 저염식이 권장되며 커피와 차, 담배, 술, 초콜릿 등을 피하는 것이 좋다.
■ 뇌질환- 대개 두통을 동반
뇌질환으로 인한 어지럼증은 장년층 이상에서 많이 나타난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생기는 뇌졸중이 대표적이다. 질환으로 인해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뇌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심지어 뇌세포가 파괴돼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갑자기 심한 두통과 함께 어지럽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마비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또한 뇌종양이 생기면 어지러울 수 있다. 뇌종양이 몸의 운동기능을 좌우하는 부위에 영향을 줘 어지럽게 된다. 이밖에 뇌혈관기형(모야모야병, 동정맥기형)도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뇌 CT나 MRI 등 정밀검사를 받도록 한다. 국내 연구결과 어지럼증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MRI 검사에서 33.7%가 뇌경색 증상을 보였고, 동맥경화 3.3%, 기타 혈관기형 및 뇌종양도 4.1%나 됐다.
■ 심장질환- 고혈압ㆍ저혈압이 원인
학교 조회 시간에 어지러워 쓰러지는 학생이 있다. 이는 일시적으로 피가 다리에 몰리면서 생기는 '기립성 저혈압'때문. 뇌는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의 20% 이상을 필요로 하는데, 충분한 양의 혈액을 공급 받지 못하면 기능장애가 생기면서 어지러울 수 있다.
최고 혈압이 100㎜Hg 이하인 저혈압은 만성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고 생활습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혈압으로 인해 어지러울 수 있으므로 혈압이 정상 수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정신질환- 우울, 불안이 원인
정신적 문제로 어지럽기도 하는데 이를 심인성(心因性)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어지럼증 환자의 20~50%다. '머리 속이 도는 듯하다' '머리가 멍하다' '아찔하거나 쓰러질 것 같다'는 등 막연한 증상을 호소한다.
원인은 불안장애, 우울증, 신체형 장애, 히스테리아, 뇌진탕 후 증후군 등이 있다. 이 경우 정신과를 찾아 치료해야 하지만, 전정기능 강화훈련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 노화- 시력 저하도 큰 원인
나이가 들면 전정기관도 노화에 의한 변화가 생겨 내이(內耳ㆍ속귀)의 감각세포 수가 줄고, 전정신경과 뇌간, 소뇌, 대뇌의 신경세포 수도 감소한다. 이는 전정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부정확하게 하고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도 줄어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이런 변화는 특히 60대 이후에 두드러진다.
나이 들수록 평형을 유지하려고 시각에 더 의존하는데 시력도 노화에 인해 망막의 퇴행성 변화, 백내장 등이 생겨 평형 유지를 매우 어렵게 한다. 또한 노화 자체도 문제지만 노인에게서 많은 당뇨병은 감각을 둔화시키고 신경 전달 속도를 떨어뜨려 다리에서 올라오는 감각을 포함한 근골격계 정보를 감소시키게 된다.
이 기능 감소는 특히 똑바로 서 있는 능력, 특히 움직이며 중심을 유지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므로 신체가 빠른 움직임을 할수록 노인은 빠르게 움직이기 어렵고 쉽게 어지럼증을 느낀다.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동선을 정해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 기타- 혈액질환과 약물중독
어지러우면 빈혈이라고 추측하기 쉬운데 빈혈로 인한 어지럼증은 드물다. 다만 여성의 경우 생리 등으로 인한 일시적 빈혈로 어지러울 수 있다.
이밖에 특수 혈액질환으로 백혈병이나 적혈구나 혈소판 등이 감소하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도 어지럼증을 일으킬 있다. 또한 일부 약은 중추신경계 기능을 억제해 어지러울 수 있다.
● 도움말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이원상 교수,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정종우 교수, 삼성서울병원 서대원(신경과)ㆍ정원호(이비인후과) 교수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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