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눈을 뜨고 코끼리(미국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이들이 몇 명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온통 ‘장님’들 뿐이었다. 누구는 뒷다리를 잡고, 누구는 몸통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생겼더라”고 했다.
끝이 보일 것 같았던 미국 금융위기가 더욱 두터운 베일에 쌓였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라는 똑 같은 사안을 두고도, 누구는 “한번은 거쳐야 할 고름을 짜는 단계”라고 하고, 다른 이는 “이제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이라고 한다. 하루 만에 안정을 되찾은 금융시장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17일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가 내린 진단은 아주 명쾌했다. 금융위 임승태 사무처장은 “AIG와 워싱턴뮤추얼이 위험한 상태로 가더라도 서브프라임 사태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고, 김용환 상임위원은 “미국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있고 미국 당국이 충분히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어 잘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오히려 호재‘라는 의견까지 공공연히 말했다.
과도한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발언일 터이고 매우 반가운 전망이긴 하지만, 선뜻 맞장구를 치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또 다시 반복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유가 예측을 잘못해서 현 정부 초기 고환율 정책을 편 것이나, 리먼브러더스의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인수할 뻔한 것이나, 또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에 나섰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것이나 이 모든 것이 대외 변수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장밋빛 전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다 같이 앞을 못 보는 마당에, 왜 우리 정부의 예측이 틀렸냐고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이런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한 대외 변수 앞에서는 정부의 전망이나 정책은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위기 조장만큼이나 무모한 낙관도 경계해야 한다. 차라리 “정말 어찌 될 지 모르겠다”는 한 정부 관계자의 말에 신뢰가 더 간다.
경제부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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