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익태의 친일 행적 때문에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논란이 벌어졌을 땝니다. 문득 서구 예술가들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괴테는 '어허 딸랑'하는 만가(輓歌) 소리를 들으며 무덤으로 갈 나이에 어린 소녀를 꼬신 사람이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천지를 떠돌며 줄줄이 사생아를 낳은 사람이고, 랭보는 남색이고, 바그너는 후원자들의 아내들과 도망질친 사람이고, 파운드는 제 발로 이탈리아까지 가서 파시스트가 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도 떠올려 봤습니다. 미국인들은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섹스 심볼인 마릴린 몬로를 정부(情婦)로 삼고,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Love me or die)"고 한 걸 알면서도 뉴욕 공항을 여전히 케네디 공항이라고 부르고 있는 게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역사 평가 기준이 너무 인간적인 허물과 '친일'이나 '반민주'에만 묶여 있지 않나 생각해봤습니다. 김소월 같은 시인에게는 민족이 위난에 빠져 있는데도 사랑타령만 한 '못난이'로 평가하고, 최남선은 역사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인데도 독립선언문을 쓰고 20년 가까이 고등계 형사의 감시를 받다가 마지막에 굴복한 것만 주목하고, 이광수는 한국 근대소설을 개척한 사람인데도 형무소에서 나오기 위해 잠시 고개 숙인 것만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외면한 건 질책 받을 일이지요. 하지만, 먼저 북에서 정적의 숙청 수단으로 조만식, 김규식, 안창호, 이승훈에게 친일 딱지를 붙인 데다가, 남한마저 태극기를 만든 박영효,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쓴 장지연, 동아일보를 창간한 김성수,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박은식을 제외하여 우리 역사를 빈약하게 만드는 데다가 애국가까지 바꾸자는 게 안타까워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절반이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나라를 택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이런 평가 기준이 심어준 자괴감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일제 치하나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1971년도의 '고려대 난입 사건'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학원을 군화발로 짓밟으면 지성의 공백이 오고, 머지 않아 학생들이 도시 게릴라로 바뀌어 막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칼럼을 쓰고 중앙정보부 분실로 끌려갔을 땝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와 시멘트 바닥에 흥건히 고인 핏자국을 보고, 고문을 하지 않는데도 취조관이 불러주는 대로 각서를 썼었습니다.
저보고 역사에서 제외해야 할 사람들의 기준을 말하라면, 오히려 국민은 생각하지 않고 당리당략만 생각하는 정치인, 공부를 하지 않는 학자, 학생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교육자, 편 가르기에 앞장서는 종교인, 사원들 봉급은 못 올려주면서 해외 골프 여행을 나가는 기업인을 꼽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빼내지 않으면 우리 젊은이들이 다시 '친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터워져야 합니다. 그러자면, 척결하기보다는 잘한 것은 계승하고, 잘못한 것은 내 경계거리로 삼아야 합니다. 이 가을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를 암송하면서 그를 빼내면 우리의 현대문학사가 얼마나 허전해질까를 생각해 봅시다. 국화>
尹石山 시인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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