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그 중 역설인 것은 친화적 관계 속에 숨은 갈등과 폭력성도 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맺는 관계의 깊이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일 것이다.
연극은 이 지점에서 발화한다. 과정이 생략된 관계의 당위적인 평화를 의심하고,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관계의 결속된 연결고리를 흔들어보려는 욕망을 일으킨다.
의심과 부정, 파괴의 단계 이후 주체와 타자, 개인과 사회, 관계와 관계 사이 더 견고한 이음매가 생성된다. 불화와 충돌을 겪고 난 뒤 세계와의 결속력은 그 전과 분명 다른 힘을 가질 것이다.
극단 놀땅의 '금녀와 정희'는 세상의 많은 관계 중에서도 가장 당위적이고도 친밀하다는 모녀 관계를 조망한다. 연극은 이 세상 모녀들의 장삼이사 격인 '금녀'(백현주)와 '정희'(권지숙)를 통해 모녀 사이에 갈등의 가능치를 다룬다.
배운 딸과 못 배운 어미, 염치와 예의를 차리는 젊음과 금을 넘는 노추 사이, 일상의 문제 해결에선 딸에게 의존하면서도 막상 중요한 순간이 오면 아들을 앞세우는 어미의 차별지심, 늙은 어미를 아이 다루듯 혼내는 모녀관계의 역전, (햄릿을 포함한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모성'은 당연시하지만 어미의 '성욕'은 혐오하고 배척하는 이기심 등 어미와 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의 유형들을 소소하고도 섬세한 일상으로 바꾸어 배치한다.
연극은 모녀 각자가 살아온 삶과 사연에 대한 드라마틱한 관심을 줄이고, 일상을 그저 재현하는 사실주의 방식도 거부하면서, 모녀관계를 낯설고 새롭게 조망해보기를 청한다.
모녀관계의 보편적 갈등에 채널을 맞추다 보니 금녀와 정희의 캐릭터 구축은 개별적이거나 구체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편이다. 게다가 별다른 극적인 사건 없이 일상에서 가능할 법한 모녀관계의 예화들을 열거하다보니 관계의 깊숙한 이면이 드러나기는 쉽지 않다.
신화비평가 노스럽 프라이의 모티프를 빌려 말하자면 막내딸 '여름'과 늙은 어미 '겨울'의 부딪침이기에, 계절의 사이만큼 갈등의 농도는 옅다. 꿈 장면을 이용해 모녀관계를 신화적으로 다시 쓰는데, 만든 이의 자의식이 워낙 선명해 모녀관계의 새로운 조망 의도가 다소 계몽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조연들의 일인다역, 가로수길 등 공간 처리의 유희적 연극성이 극을 말랑말랑 이완해 주지만 관념적 주제와 극 형식의 소박함 사이에서 연극은 자주 흔들린다. 이는 단점이라기보다 초연이 갖는 가능성일 것이다. 최진아 작ㆍ연출. 10월 12일까지 선돌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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