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대폭락이 재발할 가능성은 사자의 머리와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키메라(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동물)가 탄생하는 것 만큼이나 가능성이 낮다. 수학적으로 단순화시킨 재발 가능성은 10 –160승 분의 1에 불과하다. 이는 한 인간이 200억년 동안 살아야만 경험해 볼 수 있는 사건이고, 이미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재발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 증시가 대폭락한 후 시장이 빠르게 회복되자 월가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이 허풍 떨었다.
하지만 2008년 9월 15일 뉴욕 증시는 대폭락하면서 '검은 월요일'을 재현했다. 세계 금융시장도 동반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미국 3대 투자은행(IB)인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인수되고, 4위의 IB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신청하는 등 대형 IB들의 잇단 사망 선고가 월가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 대출)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한 세기에 한 번 있을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 "그의 저금리정책이 도화선"
미국 금융시스템이 붕괴 위기를 맞은 것은 파생상품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부실에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감염됐기 때문이다. 첨단 금융공학을 바탕으로 설계된 비우량 주택담보채권을 인수한 금융회사들이 지난해부터 집값 하락으로 쓰러지면서 금융재앙의 뇌관이 터진 것이다.
이후 5위 IB인 베어 스턴스가 모건 스탠리에 넘어가고, 2대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 월가의 금융혁신을 주도해온 상위 5대 IB중 골드만 삭스, 모건 스탠리를 제외한 메릴린치, 리먼 브러더스, 베어스턴스 3대 회사가 무참하게 쓰러진 셈이다.
50조 달러로 추산되는 파생상품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잡한 방식으로 설계돼 거래된다는 점에서 신용경색이 불거지면 금융회사의 줄도산을 가져오는 점이 특징이다. <금융시장의 야수:파생상품> 이라는 책을 펴낸 알프레드 스타이너는 "파생상품은 금융공황의 다이너마이트이고, 이 공황을 세계에 퍼트리는 도화선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뇌관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도 파생상품이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고 실토한 바 있다. 금융시장의>
서브프라임 발 금융 위기는 그린스펀 미 FRB 전 의장의 저금리 정책이 화근이 됐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1987년부터 2006년까지 FRB 의장을 맡아 장기 호황을 이끌면서 경제대통령으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을 밑도는 낮은 금리정책으로 미국인들로 하여금 저축보다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과잉소비를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저금리 정책은 모기지 부채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오고, 부동산 버블을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윌리엄 플렉켄스타인과 프레드릭 쉬핸이 <그린스펀 버블> 이라는 공저에서 "그린스펀은 미국경제의 마에스트로(지휘자)가 아니라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이라고 혹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린스펀>
■ 새로운 파생상품 또 나올 것
그린스펀이 현 금융위기에 대해 한 세기에 한 번 올 수 있는 사건이라고 강조한 것은 금리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어서 아이러니컬하다. FRB의장 시절 미국경제의 관리자로서 과격해진 파티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술통을 치워야 했지만 오히려 술병을 들고 술통으로 걸어간 점을 은연중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탐욕과 투기적 광기에 중독된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규제의 허점을 파고 들어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무정부적인 힘을 가진 투기세력은 또다시 사슬을 끊고 정신착란을 일으킨 환자처럼 날뛰며 작고 개방된 경제를 가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할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야누스적 속성이 새삼 우리를 두렵게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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