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처럼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이 없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대학생 한모(26ㆍ여)씨는 헝가리인 남자친구 자랑을 하며 연신 방긋거렸다. 지난해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만나 사귄 지 1년. 8월 귀국한 한씨는 다음달 한국에 오는 남자 친구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저 때문에 한국에 와서 영어 강사를 하겠대요. 결혼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최근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장모(23)씨는 현지에서 6개월간 사귀었던 터키인 남자친구와의 로맨스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매니큐어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혼 난 얘기를 남친에게 했는데, 깜박 졸고 일어나 보니 매니큐어가 싹 지워져 있었어요. 한국 남성이라면 이렇게 세심하진 않잖아요."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외국인 남자친구(남친) 사귀기 바람이 뜨겁다. 가부장적인 권위가 없고 애정표현이 솔직하다거나, 이국적인 매력에 결혼 부담이 없다는 등 이유도 다양하다.
외국인 애인을 둔 사람들이 경험담을 나누고, 외국인 애인을 소개 받고 싶은 사람들이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도 급증 추세다. 포털 사이트에는 '외국인 친구 사귀기' '국경없는 사랑' '외국인 커플의 모임' 등 500명에서 많게는 5,000명의 회원을 거느린 카페가 수 십개에 이른다.
중복 가입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 애인이 있거나 그런 애인을 원하는 사람이 2만~3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카페 회원 대부분이 여성들이라는 점. 회원 3,000여명에 하루 방문객만 400명이 넘는 '외국인을 사랑해 버린 사람들'카페는 아예 여성만 가입할 수 있다.
다른 카페의 관리자도 "커플 회원 대부분이 20대 여성들이고, 10% 정도만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체류 중 외국인 애인을 사귄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귀국한 뒤에도 한국에서 외국인을 새로운 애인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애인을 구하는 인터넷 회원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9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대차대조표' 상 여성 입장에서 국제연애의 이점이 더욱 많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한씨는 "짧은 치마를 입으면 한국 애인은 '옷이 그게 뭐냐. 단정하게 입어라'고 구박하지만, 외국인 남친은 내 개성을 존중해준다"고 말했다.
장씨도 "한국 남성들은 낯 간지럽다며 '사랑해, 네가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터키 남친은 남 보는 데서도 애정표현이 솔직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 남성과 달리, 외국 남친들은 개방적이고 세심하면서 로맨틱해 연애 대상으로 편하다는 얘기다.
3년간 외국 애인을 사귄 적이 있는 최모(31)씨도 "지금은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인을 사귀고 있는데, 매사 개방적이고 씀씀이가 큰 외국인 애인을 사귈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사귀게 됐다"고 말했다.
독신 여성이 크게 느는 상황에서 깊은 애정을 나누고도 뜻이 맞지 않으면 '쿨' 하게 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외국 남성과 두 번 교제해봤다는 김모(26)씨는 "외국인들은 결혼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며 "남편보다는 아직 애인이 필요한 내 입장에서는 한국인보다는 외국인 남친이 더 좋다"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 이들 여성에게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이 개방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폐쇄적인 일반적 한국인들의 시선은 부담스럽기 그지 없다.
한씨는 "외국인 남친을 사귈 때부터 각오는 한 것이지만 아직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며 "주로 이태원이나 홍대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국 남친이 편견이 없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 여성들이 정작 스스로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교제하는 남성들이 대부분 백인들이기 때문이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김유은 교수는 "외국인 남친은 국제교류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교제시 인종 혹은 국가별 선입견을 두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인 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함께 이런 점도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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