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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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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쁜 사마리아인

입력
2008.09.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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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일약 베스터셀러가 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은 미국 등 선진국들이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허구성을 꼬집은 책이다. 부자나라 사람들이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을 열심히 설교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에서 경쟁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노상강도를 당한 사람을 돕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오지만 이 얘기가 극적인 것은 당시 사마리아인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돕는 척 하면서 오히려 이용하는 무정한 사람들을 뜻했기 때문이다.

▦ '나쁜 사마리아인'에 대한 통찰 중 압권은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말이다. 그는 영국이 관세와 보조금 등 보호무역으로 경제패권을 장악하고도 다른 나라에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위선을 범하고 있다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쫓아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질타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장 교수의 또 다른 저작 <사다리 걷어차기(2004)> 에서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말하는 대로 하라"고 외친다.

▦ 미국정부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후폭풍에 휩싸여 유동성 위기에 빠진 양대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결국 2,00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구제금융을 제공키로 해 논란을 빚고 있다. 부실한 금융과 기업은 시장논리에 의해 도태돼야 한다는 월가 자본주의를 전파해온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치욕인데도 모두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치켜세운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기업과 금융의 도덕적 해이를 매도하며 내린 가혹한 처방을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더욱 씁쓸하다.

▦ IMF총재까지 '현명한 처방'이라고 거든 '미국 판 대마불사론'의 논거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서 방치하면 세계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가치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이 이번 구제금융을 크게 반긴 것과 달리 '상품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미국은 부자들을 위한, 중국보다 더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맹비난한 것이다. 달러자산에 투자한 버핏과 원자재에 투자한 로저스의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언행이 일치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에나 있는 모양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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