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친정에 다니러 온 딸과
엄마가 마루 끝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얼굴에 부채질을 한다
치우지 못한 여름 습관이다.
무슨 이야기 끝인지 한 사람이 운다
나쁜 습관이다.
오래 울진 않는다
해가 짧아졌구나, 저녁 안쳐야지
부채를 집어던지며 일어선다
엄마의 습관이다
가을이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근친을 온 딸과 어머니처럼 정겹고, 서러운 관계도 없다. 그 사이에는 으레 오랜만의 수다가 있기 마련이고, 수다 끝에는 한숨과 눈물이 따라오기 십상이다. 연속극에서 흔히 봐 온 습관적인 장면 앞에 우리를 붙들어놓는 힘은 이제는 같은 처지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연민어린 시선들에 있다.
한 가계의 어미가 되어 살아가는 동안 겪을 신난고초가 어디 하나 둘이랴. 묵묵히 살아온 이야기를 다만 들어줄 수 있을 뿐인 그 안타까운 마음이 서로에게 부채질을 한다. 여름의 습관이라고 짐짓 딴청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잔바람이라도 불러와서 마음의 화농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혀 주고 싶은 마음이 거기에 배어있는 것이리라. 마치 괜찮다고, 괜찮다고 등을 다독거려 주듯이. 주름 많은 삶에 살을 대어 바람을 불러오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라는 듯이.
모든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간다고 했던가. 저녁을 짓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엄마의 습관’이 부채를 집어던지며 울음을 뚝 멎게 하고 있다. 모전여전(母傳女傳) 밥을 짓는 습관, 지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습관이 바로 성숙한 가을의 초상이다. 이런 식의 습관화된 사고조차 반성하고 있는 것이 시의 습관이라면 어떨까?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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