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고합 OOO, 피고인 원정화."
10일 오전10시 30분.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심리를 맡은 수원지법 제11형사부 신용석 부장판사의 호출에, 310호 법정을 가득 메우고 있던 취재진, 일반인 등 40여명의 방청객의 눈길이 일제히 피고인석 옆 출입문으로 쏠렸다.
원정화는 옅은 연둣빛 수의 차림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초췌한 낯빛에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원정화는 젊은 장교들을 홀린 요염한 여간첩 마타하리의 모습도, 특수 남파훈련을 받은 쉬리의 여전사 이방희의 모습도 아니었다.
피고인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판사의 인정신문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하며 짧게 응답했다. 검사의 공소요지 낭독 후 "공소장이 사실과 같습니까?"라는 판사의 물음에도,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예"라며 답했다.
간첩혐의를 인정한 원정화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판이 진행된 50여분 내내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움츠렸다.
간첩 사건 수사 주임검사이기도 했던 수원지검 공안부 윤대해 검사는 총 261가지나 되는 증거를 40여분동안 일일이 나열하며 피고인 원정화를 압도했다. 증거물 목록에서 북한, 중국, 남한에서의 간첩활동과 관련한 행적이 차례대로 드러나자, 원정화는 아예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어린 시절 특수훈련을 받다가 입은 상처의 사진, 지난해 음독자살을 시도한 연인 황모 대위의 입원기록, 남파간첩으로 침투하다 사살된 친부와 관련한 수사기록 등,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증거물 목록이 제시될 때마다 원정화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훔쳤다.
원정화는 간첩 행위를 반성한다는 취지의 전향서를 전날 재판부와 검찰에 제출했다. 전향서는 A4용지 3장 분량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며 "7살배기 딸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신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평생 참회하며 살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날 재판에는 국내외 취재진 60여명이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법원에 일을 보러 왔던 민원인들도 호송 버스에서 내리는 여간첩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
특히 일본 언론들이 이날 재판에 큰 관심을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본 방송사들은 법원 주변에 위성중계 차량을 배치하고 실시간 리포트를 내보냈다. 아사히 TV는 재판 시작 전 법정 촬영을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변호인의 증거 동의, 증거조사, 피고인 신문 순으로 진행될 원정화에 대한 2차 공판은 10월 1일 오후 2시 30분으로 잡혔다. 계부 김동순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한 첫 공판도 같은 날 오전 수원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 원정화 전향서 요약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선처를 바라며 눈물을 머금고 염치없이 펜을 들어 한자 한자 써 내려갑니다.
철이 없어 몰랐습니다. 장군님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목숨 걸고 중국으로 건너온 탈북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보냈습니다. 미군기지, 군사정보 등을 파악해 넘겨 주었습니다. 임무 수행을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탈북자들을 만난 후 제 죄가 얼마나 큰지, 또한 북한 체제가 너무 잘못됐고 하루빨리 무너져야 하는 것을 이 대역죄인은 뒤늦게 알았습니다. 검거된 후 검찰, 기무사, 경찰관님들의 너그러우신 인품에 탄복했고, 대한민국 법에 감동했습니다.
저에겐 7살 딸밖에 없습니다. 이 한목숨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자유 대한민국에서 제 딸과 행복하게 살게 해주십시오.
이제 다 밝히고 나니 속이 다 편하고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새 세상 문이 활짝 열린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은 세뇌교육 탓이었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입니다. 분단의 비극이고 북에서 태어난 죄입니다.
바람처럼 이 몸이 흩어져도 천번 만번 다시 자유 대한민국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딸과 함께 참회하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 아, 정다운 나의 사랑 대한민국을 위해 살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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