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무학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왕이 될 것이라는 예시를 받은 후 석왕사를 지었으며, 경복궁에 불단을 지어놓고 예불을 드리기도 하였다. 그는 그렇게 평생을 부처님께 의지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이런 이태조가 건국한 조선은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고수하였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해탈과 구원의 문제를 국가통치와 분리시킨,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근대적 국가형성의 기틀이었다.
정교분리로 이룬 문화국가 조선
이후 조선에 있어서 유교와 불교는 절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상생하였다. 강력한 숭유억불 가운데도 <석보상절(釋譜詳節)> 을 편찬한 세조를 비롯하여 여러 임금들이 개인적으로 불교에 깊이 의지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대비의 후원을 받은 보우대사(普雨大師)가 승과(僧科)를 부활시키는 등 조선불교의 중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민중의 피폐해진 삶에 불교가 커다란 구원의 등불이 되었다. 조선은 이러한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메이지유신을 이끌었던 일본 지도자들이 일본보다 500년이나 앞선 나라라고 평가했을 만큼 선진적 정치시스템을 정착하고 찬란한 문화를 창달할 수 있었다. 석보상절(釋譜詳節)>
조선 건국의 사대부들이 신봉했던 원칙은 국가운영에 있어서 정교분리(政敎分離)였다. 이는 근대성의 기반이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헌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지난 600년 동안 지켜지던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21세기에 무참히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 공직자들이 앞 다투어 특정 종교의 전도자가 된 것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한국이 신정국가(神政國家)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다. 국가와 교회가 구분이 모호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모세같은 선지자이며, 한 손에 성경, 다른 손에 창을 들고 십자군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용맹스런 '하나님의 장군들'이 그의 곁을 철통같이 에워싼 느낌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누가 뭐래도 신은 내 편이며 그들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제거해야 할 사탄일 뿐이다.
보다 못한 불교가 들고 일어나자 이번에는 불교가 일으킨 종교 대립으로 문제를 왜곡하면서, 대통령이 성난 불심을 달래는 선심정책 몇 가지만 제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오도한 해석이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 정책은 기독교 편향주의 차원이 아니다. 특정 종교에 정부가 접수된 상황으로 보인다. 이는 정교분리라는 헌법의 기본가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합리와 이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성에 대한 포기선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 당시 성난 불심을 경험해 본 한나라당도 대통령의 책임 있는 조치가 미흡한 것에 답답해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에게도 위기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개신교의 역사 자체가 근대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종교에 '접수'된 이명박 정부
포교 이후 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한국의 기독교는 최근 천주교의 교세 확장으로 성장세가 주춤하고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이후 해외선교의 중단 및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갈등 등으로 고민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방법은 하나님의 뜻이 대통령이나 경찰청장 같은 높은 곳에 앞서서 낮은 곳에서 은밀히 임하여지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의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
영국 튜더 왕조의 메리(Mary)1세는 영국을 로마가톨릭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개신교도 300명을 화형시켜'Bloody Mary'라는 악명을 얻기도 하였다. 기적같은 종교 간 평화가 깨지는 날, 근대 이전 유럽 사람들이 겪었던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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