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김진각 사회부 차장
40여일 전, 첫 주민직접 투표로 실시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는 말그대로 격전을 치렀다. 칠순을 훌쩍 넘겼지만 선거운동 기간 내내 하루도 쉬지않고 서울 곳곳을 누비면서 주민들을 만날 정도로 강철 체력을 과시했다.
당선된 그는 직선 교육감에 취임하자 마자 국제중 신설, 고교 선택제 확대 등 굵직굵직한 정책을 내놓으며 대한민국 교육 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주요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그는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더 잘할 수 있고, 뒤쳐지는 학생은 실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환경을 임기(2010년 6월) 중에 조성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 했다.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에 따라 1년10개월 임기를 수행해야 하는 공 교육감은 '포스트 공정택'의 조건도 제시했다. 그는 "혼란없이 주요 교육정책들을 잘 매듭지을 인물이 교육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거 얘기부터 잠깐 하고 가자. 선거 결과를 두고 '강남 교육감'이라는 지적이 있다.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권에서 득표율이 높아 그런 말들이 나온 것 같은데, 사실 다른 지역에서 어느 정도 뒷받침을 안해 줬다면 당선은 어림도 없었다.
내가 그 지역(강남권)에서 교육위원을 두 차례나 했고, 학력신장에 대한 소신을 학부모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이 지지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강남에서 전국교직원노조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교사들도 기를 못피고 산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서 표가 상대적으로 덜 나온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전교조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금천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교조 소속 교사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또 전교조와 함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 진보 진영 정당과 단체, 기관들이 다 결속해 있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선거를 치르며 학부모들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학부모들이 어떤 교육이 과연 자녀에게 더 필요한지 분명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학부모 연수 등을 강화하는게 필요하다. 각종 학부모 단체들을 망라한 연합체 구성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남 외 지역의 교육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하지 않나.
"흔히 나를 부유 계층만을 대변하는 사람처럼 말하는데 그건 정말 오해다. 지난 4년간 교육감으로 재직하면서 실행에 옮긴 정책들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을 통틀어 실업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지급율은 서울시교육청이 가장 높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교육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 추진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특정 지역 및 자치구를 특별지원 대상으로 선정해 집중 지원할 생각이다. 과거 저소득층 대책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두고봐라."
-국제중학교를 두고 말들이 많다. 정말 영어를 못해도 입학이 가능한지, 추첨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국제중이라는 학교 형태가 어느정도 자리잡으면 선발 방식은 학교 자율에 맡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추첨제를 도입한 것은 국제중이 사교육의 진원지라는 비판이 하도 많아서 방법을 강구하다보니 실무진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다. 그게 내년에 처음 적용되는 것이다."
-애초 구상에는 추첨제를 배제했다는 말인가.
"국제중의 설립 취지를 잘 알아야 한다. 국제 감각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려면 그에 맞는 입시 전형을 짜야 한다. 간접적으로 조기유학과 같은 다양한 수요를 국제중으로 흡수하자는 목적도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는 외국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 왔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국제중이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고 본다.
국제고와의 연계성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학교 체제를 만들어 어떤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라도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게 국제중을 설립하려는 원래 구상이었다.
따라서 3단계 추첨 전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비판 여론도 있는 만큼 일단 사교육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갖고 노력한 뒤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오면 그 때 가서는 전형 방식도 당연히 바꿔야 한다."
-임기 중에 국제중을 더 확대할 생각은 없나.
"사교육비 비판이 워낙 거세 임기 내에 늘릴 계획은 전혀 없다. 주어진 시간도 1년 10개월 밖에 안된다."
-전교조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감 선거 당선 직후에는 전교조와 대화하겠다고 했는데, 요즘 단체협약 폐기 가능성이 나오는 ?보면 입장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든다.
"전교조 소속 교사들도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런 선생님들을 함부로 어떻게 할 의도는 없다. 단 2004년 체결됐던 단체협약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교사들만 편하자는 생각 밖에 안든다. 한 번 봐라. (전교조 교사들은)하루 일과의 기본이 되는 주번일지를 안 쓴다. 심지어 직원 출근부를 없애 조회를 해도 누가 참석하고 빠졌는지 파악이 안된다.
이건 정상적인 지도 방향이 아니다. 귀찮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이런 내용에 합의를 했다면 동의해 준 쪽도 문제다. 교사들이 먼저 노력하면 학생ㆍ학부모에게 존경을 받기 마련이다. 열심히 안하고 존경 받기만 바라서는 안된다."
-2010년부터 시행할 고교 선택제도 국제중 못지 않은 관심사다. 비선호 학교로 낙인 찍히면 학교 운영이 어려워질텐데 이 학교들에 대한 구체적인 업그레이드 방안은 있나.
"교육도 경쟁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선택권 확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최근에는 중국까지 교육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의 입지적 여건 등에 의해 초기에는 비선호 학교로 인식될 소지는 있다. 2년간의 인위적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 한다든지, 자습실을 멋지게 꾸며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치면 학생들이 '학교가 나를 위해 이 정도로 노력하는 구나'하는 존경심이 저절로 생길거다. 학력 향상도 당연히 뒤따르게 될 것이다."
-노력해도 안되는 학교가 있지 않은가.
"경험상으로 학교가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주면 소문은 금세 퍼진다. 정성이 깃들었을 때 선호학교로 방향을 틀어갈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그래도 발전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학급감축에 들어가야 한다.
최악의 경우 폐교까지도 염두에 둘 수 있다. 대신 모의 배정 결과에서 비선호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학교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지원을 해줄 계획이다.
공립학교는 우수교사들을 집중 배치하도록 하겠다. 경우에 따라 강남지역 교사들을 강북 학교에 투입할 수도 있다. 시설이 낙후돼 학부모들이 꺼려 한다면 고쳐주겠다. 사립학교는 학급 감축을 통해서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 법인과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국제중이나 고교 선택제 모두 결국에는 귀족학교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수월성 교육은 최종 목표일 뿐이다.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학생 개인의 학력이 껑충 뛰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간 학력 미달학생 제로화 운동을 추진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대안학교도 한 방법이다. 학업에 뜻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학적은 원소속 학교에 두고 실제 공부는 적성과 소질을 살릴 수 있는 대안학교에서 하면 된다.
수월성 교육의 요체는 다양한 교육 체계를 만들어 모두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국제중 신설이나 학교 선택권 확대 방안은 아주 부차적인 사안일 뿐인데도 언론에서는 이 문제만 갖고 비판한다. 나도 50년 교육자 생활을 한 사람이다. 어디 귀족학교만 세우려고 교육감이 됐겠느냐."
-교원평가제도 관심사다. 전교조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데 임기 내에 추진하긴 하나.
"사실 선거 공약으로 교원평가제를 내세우는 바람에 점수를 많이 잃었다. 나를 좋아했던 교사들도 교원평가한다니까 싫어하더라. 그래도 할 일은 해야되지 않겠는가. 현인철 전교조 대변인은 굉장히 소신이 있는 사람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진정성을 평가받을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태스크포스(TF)팀에서 교원평가제 시행과 관련해 세부안을 만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가 필요하고, 교원단체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남아있어 시일은 좀 걸릴 것이다."
■ 李대통령과 서울시장때부터 교육 철학 공유
지난달 초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을 청와대로 불렀다. 첫 주민 직선에서 승리한 그를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점심 메뉴로는 냉면이 나왔다. 대화 화제는 선거와 국제중 신설에 모아졌다. "선거 치르느라 수고했다"는 이 대통령의 말에 공 교육감은 "최선을 다했으나 표가 너무 적어 죄송스럽다"고 화답했다.
선거에 승리하기는 했지만 보수 후보 단일화에는 실패하는 바람에 손쉽게 이길 수 있었던 게임을 초박빙으로 끝내야 했던 소회를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공 교육감은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 심정은 정말 그랬다"며 "하지만 단일화가 안된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다는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국제중 신설에 대한 이 대통령의 관심은 지대했다. 국제중을 신설해야 하는 이유와 문제점 등을 물었고, 공 교육감은 "하루 아침에 결정한 사안이 아니며, 참여정부 시절인 3년전에도 추진했다가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일단 보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여건이 됐기 때문에 국제중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중 신설은 평준화 교육 보완과 수월성 교육을 위해 오랫동안 가져왔던 소신 중 하나"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과 공 교육감의 인연은 남다르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4년, 공 교육감은 간접 선거로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됐다. 두 사람은 수시로 만나 교육에 대한생각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 시장이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 만든 하이서울 장학금의 아이디어도 공 교육감이 제공했다는 후문이다. 공 교육감은 "이 대통령과 교육쪽 생각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단언했다.
정리=김이삭 기자 hiro@hk.co.kr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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