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임지현 한양대 교수 등 일군의 학자들이 정치, 경제 등 큰 주제 대신 박정희 시대 대중들의 일상을 연구해 "박정희 독재체제는 대중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라는 '대중독재론'으로 논쟁을 일으킨 후 이 시기 대중들의 일상은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새마을운동, 주민등록증, 가족계획, 혼분식 장려운동, 호스티스 영화 등을 소재로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의 연구자들이 펴낸 <국가와 일상> (한울아카데미 발행)도 이같은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와>
16편의 글은 다소 편차가 있지만 "박정희 독재체제는 자발성보다는 국가의 강제적인 '동원'에 의해 지탱됐다"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어 '대중독재론'과의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하다.
■ 가족계획
김명숙 상지대 교수(정치학)는 1961~79년 이뤄진 가족계획의 현황을 개관하고 가족계획 당사자, 정책가, 전문가들의 반응을 취합해 박정희 체제의 성격을 규명한다.
기념우표 발행, 대한가족계획협회 설립, 피임약 보급, 계몽영화 제작, 가족법 개정 등 이 시기 가족계획운동은 전방위적이었으나 당시를 회상하는 이들의 반응은 온도 차가 났다.
"국가에서 장려하니까 했으며 좋다고 생각했다"고 호응하는 이가 다수였으나 찬성하는 이들 중에서도 "가족계획 요원을 접했을 때 사실 좀 지나칠 정도로 권장하는 것 같았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반면 자녀를 노동력이라는 관념으로 생각했던 농촌지역 출신 여성의 경우 "정부는 쓸데없지. 그때 뭐 할라고 그래 시키가꼬, 지금 애들이 모잘라서 우짤끼고"라며 국가 주도 가족계획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가족계획은 장발 및 미니스커트 단속, 혼분식 장려처럼 통제 지향적 국가동원체제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었으나, 성에 대한 통제라는 점에서 강압적 기제가 동원되기 힘든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며 "국가는 욕구의 일방적 주조자이자 강제집행자로서만이 아니라 잠재적 견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주민등록제도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주민등록제도의 도입을 한국사회의 일상적 감시사회화, 구성원들의 국가주의 내면화를 촉진한 기제로 파악한다.
그는 1962년 6월부터 시행된 주민등록제도는 전 국민에게 강제되는 거주지 등록제도, 전 국민에게 고유하고 불변한 번호를 부여하는 고유번호제도, 모든 성인에게 강제발급하는 국가신분증제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감시체계로 평한다.
특히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는 십지문 등록제도는 국민을 국가의 주권자로 존중하지 않고 국가가 국민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국가주의'의 문제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정보화의 진행에 따라 주민등록제도는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국가권력의 감시를 더욱 강력히 내면화하게 된 점이라고 홍 교수는 비판한다.
가령 모든 국민이 성인이 되면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되면서 주민등록증이 '성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청소년들로부터 일종의 열망의 대상이 된 결과가 야기됐다는 것.
그는 "주권자가 자발적으로 감시대상이 되면서 주권자의 권리를 상당한 정도로 포기하는 반민주적 상태가 계속 재생산되는 정치적 효과가 빚어졌다"며 "주민등록제도를 약화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가 크게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새마을 운동
이밖에도 혼식 장려의 영향이 일시적이었던 반면, 분식 장려가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나타나 우리의 식습관을 바꾼 원인을 밀의 소비 촉진을 바라는 미국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한 공제욱 상지대 교수의 글, 70년대 초 활기를 띠었던 새마을운동이 후반에 급속히 쇠퇴한 원인을 국가가 새마을운동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데 인색해 자발적 지도층을 형성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파악한 고 원 상지대 연구교수 등의 글도 박정희 시기 국가동원의 총체적 일상화 정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공제욱 교수는 "일상을 들여다 보되 국가가 어떻게 일상에 개입했는지를 중심으로 파악했다"며 "국가의 동원과 대중들의 자발성 측면에서 박정희 체제는 파시즘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독재적 체제라는 것이 우리 연구팀의 결론"이라고 밝혔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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