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중 스타로 누구를 떠올리십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엘비스 프레슬리(Presley)와 비틀스(Beatles)를 꼽고 싶다. 물론 엘비스가 훨씬 선배이고, 비틀스 멤버들이 가수 준비를 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가 엘비스였다고 한다. 사후에도 밀리온셀러가 나올 만큼 영원한 스타 엘비스와 4명중 두 사람이나 세상을 떠났어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비틀스--이 두 스타들과 나는 아주 조금이지만 묘한 인연이 있었다.
그 인연이라는 것이 이렇다. 우선 엘비스. 1960년, 내가 군대 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나는 카투사(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로서 부평의 애스컴 지구 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찌 어찌해서 사령관 표창을 받았고, 그 연고로 엘비스의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후 그의 공연을 두 번째로 본 것은 하와이에서다. 호텔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큰 호텔에서 공연할 때 맨 뒤에서 구경을 했다.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내가 느낀 감동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엘비스는 먼발치에서나마 공연을 본 인연이 있지만 비틀스하고는 한창 전성기 때는 만난 적이 없고 묘한, 아주 기묘한 인연만이 있다. 그들이 해체되고 나서 존 레논(John Lennon)이 단독으로 또는 그의 부인인 일본 출신 오노 요코(Ono Yoko)와 함께 활동 할 때, 그들은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 고급 아파트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가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공원 안에 있는 유리로 된 식당 ‘태번 온 더 그린’이나, 맨해튼 최고의 레스토랑(그 당시)인 ‘21클럽’등에서 그를 몇 번 만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약간 걱정을 했다. 보디가드가 따라 다니긴 했겠지만 누군가가 해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범행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자유스럽게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 심지어는 식당 안에서 사람들이 불쑥 손을 내밀어도 악수를 해줄 정도이니 이건 무방비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 걱정은 현실로 돌아왔다. 1980년 12월 8일 저녁, 집 앞에서 부인 오노와 함께 리무진 차에서 내리는 순간 괴한이 쏜 총에 맞았다. 다섯 발의 총탄, 엄청난 피를 흘리면서 그는 경찰을 불러 달라고 했고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도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신문과 방송은 이 뉴스를 긴급으로 내보냈고, 세계가 경악을 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잡혔다. 며칠 후 그를 추모하는 큰 모임이 바로 그의 집 옆 센트럴파크에서 열렸다. 공원에는 수 십만명이 운집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물론 나도 공원에 갔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왜 그랬을까? 범인은 왜 그를 살해했을까? 신문에는 별의별 추측 기사가 실렸지만 결론은, 범인이 정신병자인 것으로 귀착되었다. 그러나 28년이 지난 지금(2008년 8월)에 와서 범인 마크 채프먼(Chapman)이 밝힌 살해동기는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를 죽이면 내가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가 총을 쏜 이유였다는 것이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어이없는 일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65년에 또 있었다. 이른바 ‘짝퉁 비틀스’ 사건이다. 나하고 비틀스의 ‘묘한 인연’은 바로 이것이다. 그 당시 한국일보의 자매 주간지인‘주간한국’이란 매체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주간지이긴 하지만 다른 어떤 일간 신문보다 훨씬 부수가 많았고 열독율이 높았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박인순씨가 나를 찾아왔다. 미 8군부대 무대에 쇼를 올리던 프로모터 일을 하는 분이었다. 독특하게도 항상 콧수염을 기르고 다녀서 ‘쪼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나를 찾아와서 깜짝 놀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비틀스를 한국에 데려다 공연을 하겠다.”는 것이다.
비틀스가 우리나라에 온다? 63년에 공식 데뷔한 이후 인기가 최고 절정기에 올라있던 비틀스가 한국 공연을? 못할 것도 없지만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박인순씨는, “틀림없이 오니까 신문에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에게 비틀스의 사진과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 다음날 그는 사진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한국 공연을 하겠다는 4명의 영국인들은 비틀스가 아니었다. 머리도 길고 옷도 몸에 착 달라 붙게 입고 있고, 얼굴 까지도 비슷하게 생겨서 얼핏 보면 그대로 비틀스였다. 심지어 한 사람은 폴 매카트니하고 거의 닮아 있었다. ‘리버풀 비틀스’라는 이름을 가진 밴드라는 것이 박인순씨의 설명이었다. 영국의 리버풀에는 비틀스를 모방한 밴드가 부지기수로 많은데 이들도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오리지널만 아니지 노래도 똑 같고, 무대 매너도 똑 같다”고 했다.
어찌됐건 짝퉁 ‘비틀스’는 서울에 왔다. 공연장은 경복궁 안에 만든 가설 무대였다. 지금 민속박물관이 있는 그 자리에 철골로 가건축 공연장을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비틀스를 흉내 낸 밴드의 공연이 3일 동안 열렸다.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I wanna hold your hand)’,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등 비틀스의 노래를 썩 잘 불렀다.
KBS와 MBC의 FM 라디오가 와서 생방송으로 중계를 했고 나는 방송에 출연을 해서 해설을 맡았다. 나는 몇 번 씩이나 “저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라 무늬만 비틀스다”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나 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냥 신나게 즐겼다. 심지어 무대 바로 밑에는 1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 나가 음악에 맞춰 트위스트 춤을 추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진짜든 가짜든 관계없다는 모습이었다. 그 때는 그토록 젊음을 발산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박인순씨가 나를 다시 찾아 왔다. 나는 그에게 “어째서 처음에 비틀스가 온다고 해서 혼란을 주었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형, 이번에 내가 미국 영화배우 제인 맨스필드를 데려다 공연을 하려고 하는데 기사 좀 써 줄라우? 이번엔 가짜가 아니고 진짠데.”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