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톡만. 아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인물이다. 30대에 미국 연방정부 예산청장이라는 중요한 정부의 보직을 맡아 베트남전 당시 국방장관을 지낸 맥나마라에 이어 미국정부의 '천재 소년(whiz kid)' 계보를 이어간 그는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라는 경제흐름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즉 그는 1930년대 이후 미국을 지배해온 민주당 지배체제, 그리고 뉴딜정책처럼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케인스주의경제에 종지부를 찍은 레이건 대통령의 예산청장으로 레이건 혁명을 주도했다.
감세 주도한 레이건의 예산청장
당시 미국은 많은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소위 '큰 정부'로 인해 많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었다. 특히 1981년 현재 한 해 예산적자가 800억 달러에 달했고 누적된 정부의 빚이 1조 달러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은 영국의 대처 총리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주도해온 '큰 정부'를 공격하고 정부의 규제와 활동, 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깎아 주겠다는 보수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을 약속해 선거에서 승리했다.
특히 스톡만은 레이건 정부의 초대 예산청장으로 큰 정부를 해체하는 총사령관 역할을 담당했다. 스톡만이 주도한 레이건 혁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후 보수정부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으로, 세금을 대폭 줄여주는 감세정책이었다. 정부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세를 한다는 것이 기이하지만 스톡만은 라파곡선이라는 이론을 동원해 이 같은 정책을 정당화했다.
즉 세금을 줄이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해 경제활동이 활발해짐으로써 세금 징수의 대상이 되는 경제규모가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율을 낮추어도 실제로 증수되는 세금액은 늘어나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쉽게 말해, 세금을 30% 걷으면 경제규모가 1조 달러가 되어 세금이 3,000억 달러 걷히지만 세금을 25%로 낮추면 경제규모가 1조 4,000억 달러로 늘어나 3,500억 달러의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같은 논리의 타당성과 상관없이 세금을 줄여 준다고 하니 이 정책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예산청장을 사임한 1986년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는 2.1조 달러로 늘어나고 말았다. 즉 1776년 미국이 건국한 이래 레이건 집권 전까지 225년 동안 96개 의회와 39명의 대통령이 남북전쟁, 대공황, 세계대전 등을 거치며 누적해 놓은 빚보다 더 많은 적자를 레이건 정부는 불과 4년 동안 기록하고 만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민주당은 레이건의 감세정책이 소수 부유층을 위한 특혜정책을 사탕발림으로 포장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비판했다. 스톡만 역시 자신의 감세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역사 상 아마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펴겠다고 예고하고 나섰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하자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감세정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스톡만 실험의 비극이다. 스톡만 실험만이 아니라 그간의 여러 경험을 비교해 보면 감세정책이 경제 활성화를 가져온다는 증거는 없다.
경제활성화 효과 입증사례 없어
사실 정부의 감세정책 발표가 있자 한나라당의 초선의원들까지도 "정부는 경제 살리기의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기업 규제 완화와 감세를 사용하고 있는데, 외국 사례에서도 감세가 경제 활성화를 가져왔다는 보장은 없다"고 비판적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결국 고소득 재산가와 재벌,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 이명박 정부의 감세안이 경제활성화도 가져오지 못하면서 국가의 재정적자만 누적시키고 이미 사상 최고수준으로 악화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박산성'을 배회하는 스톡만의 유령을 어찌할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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