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출간된 장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발행)는 젊은 일본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ㆍ29)의 두 번째 한국어 번역작이다. 대학원생이던 2003년 <태양의 탑> 으로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모리미는 대학 시절부터 줄곧 살고 있는 교토를 무대로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개성 있는 소설을 발표해왔다. 태양의> 밤은>
2006년 발표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는 이듬해 최고 권위의 대중문학상인 야마모토슈고로상을 받고 서점대상 2위에 오른 모리미의 대표작. 밤은>
천진하고 호기심 많은 여대생의 세상 나들이와, 그녀를 짝사랑해 쫓아다니는 선배 남학생의 수난을 만화 풍의 환상과 유머를 가미해 그린 소설이다. 현재 교토의 한 도서관에서 일하며 작품 집필에 힘 쏟고 있는 작가를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는 기이한 캐릭터, 비현실적 돌발 상황 등으로 코믹 만화 같은 느낌을 준다. 여주인공 곁을 얼쩡대던 선배가 하늘에서 떨어진 비단잉어에 맞아 기절하는 것처럼. 이런 만화적 상상력의 원천은. 밤은>
"어릴 때 미야자키 하야오, 고교 시절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다. 그런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내 소설은 영상적 요소뿐 아니라 문장으로 생각을 부풀리는 '말의 유희'가 많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만화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 여주인공이 매우 착하다. 자기를 성추행한 중년 남자, 악덕 고리대금업자 노인에게도 기꺼이 선의를 베푼다. 시종 남의 사정을 먼저 헤아리는 캐릭터인데, 남성적 판타지가 개입된 건 아닌가.
"쓰면서 '이런 여성이 있다면 참 귀여울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이고 즐겁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순진한 여성은 여러 성가신 일에 휘말릴 테지만, 작품에선 그녀가 혹독한 경험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판타지다."
- 꽤 진지하게 읽을 만한 구절이 많다. 예컨데 노인은 여주인공에게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고 거듭 독려하고, 소년으로 현현한 '헌책시장의 신'은 악질 수집가의 손에서 고서를 해방시키겠다며 분주하다. 이 작품에 담고 싶었던 큰 주제들은 뭔가.
"글쎄.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긍정적이고 순진한 여성이 즐겁게 보내는 시간 그 자체, 수많은 괴짜들이 활기차게 뒤섞이는 혼란스러움, 사람과 사람이 의외의 장소에서 연결되는 재미, 나 좋을 대로 수습하는 이야기의 쾌감이다."
- '교토 작가'로 불릴 만큼 교토, 특히 교토대가 있는 사쿄구(區)를 무대로 작품을 써왔다. 교토는 한국의 경주 같은 고도(古都)인데, 이곳을 즐겨 소재로 삼는 이유는.
"교토는 학창 시절부터 계속 살아온 곳이다. 익숙한 일상적 풍경을 배경 삼지 않으면 상상력이 잘 가동되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독자들이 '오래된 도시라면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날 법하다'는 기대를 품기 때문이다. 내 소설이 교토 아닌 곳을 무대로 했다면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을 들었을 것이다."
- 한국에 소개된 두 소설 모두 대학생이 주인공이다. 다른 작품 중에도 '대학생 소설'이 많다고 들었다.
"대학생은 행동은 어른이되 아직 사회인이 아니라서 시간이 자유롭다. 또 생활 패턴이 대체로 간단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들기에 아주 편하다."
- 명문 교토대와 동 대학원에서 응용생명과학을 전공했다. 학업 대신 작가의 길을 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혀. 원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이과로 진학한 것은 문학 외에 폭넓은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입김도 없지 않았겠지만. 처음엔 소설은 엄숙한 것이라 여겼지만, 대학 서클 낙서장에 남긴 내 글에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고 웃기는 이야기를 써봤다. 그게 데뷔작이 되면서 자연스레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 한국엔 이사카 고타로, 나스 키노코, 히라노 게이치로, 와타야 리사, 가네하라 히토미, 아오야마 나나에 등 1970, 80년대 생 일본 작가들이 여럿 소개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런 동세대 작가들과 자신을 비교해본다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읽는 작품도 도스토예프스키, 우치다 핫겐 등 조금 오래된 작가 것이 많다. 그래서 내 문장이 예스러운데, 젊은 작가가 구사하는 의고체라 색다르고 재미있다고 봐주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온다 리쿠와 이사카 고타로에겐 친근감을 느낀다. 두 분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내가 자유롭게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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