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수치심의 역사'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터부…그 알몸의 역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수치심의 역사'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터부…그 알몸의 역사

입력
2008.09.08 06:50
0 0

/장 클로드 볼로뉴 지음ㆍ전혜정 옮김/에디터 발행ㆍ552쪽ㆍ1만9,800원

수치심의 절정은 벗은 몸이다. 그러나 나체는 동시에 상상력의 보고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의 벗음이란 '가장 달콤한 터부'다. 인간의 수치심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무뎌져 왔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맨살'을 어떤 식으로 포용해 왔을까.

오늘날 공공 장소에서의 알몸은 성해방 등 육체와 밀접한 문제에서는 물론, 친환경론자들의 배기 가스 반대 시위나 방사능폐기물처리장 건설 반대 시위 등 사회적 이슈에서도 흔히 접하는 '보편 언어'로 자리 잡았다. 해외의 격정적 록 콘서트에서 나체는 거의 당연시된다. 책은 "어느 시대에서나 아웃사이더들은 나체주의를 이야기했다"며 그 일탈성에 초점을 맞춘다. 책은 따라서 맨살을 보여야만 했던 자들이 쓰는 일탈의 역사다.

수치심 때문이라면 죽어도 좋았다. 의사에게 몸을 보이지 않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도왔던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다. 결국 암으로 숨진 그녀는 맨살을 보일 수 없다며 치료 한번 안 받았다. 수치심을 보유하고 있는 '인사이더'임을 목숨 걸고 증명한 셈이다.

왕에게는 수치심이 없었다기보다 수치심이 금지돼 있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임금은 벌거숭이"라고 감히 입밖에 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엄격한 프랑스의 궁중 예법에 의해 그들은 "입회인이 있는 가운데 초야를 치러야 했으며 공개 분만을 해야 했"(256쪽)다. 아무리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라 할지라도 자손을 잉태할 신체 조건을 갖췄는지 검증하기 위한 모욕적 신체 검사를 궁녀로부터 받아야 했다.(259쪽)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영원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도 결국은 수치심의 문제다. 17세기의 세례화에서 아기 예수는 망토 같은 것을 둘러야 했고, 교황의 외설 판정에 따라 옷을 단단히 입어야 했던 이유다.(306쪽) 덧칠 등 개작도 서슴지 않았다.

눈물겨운 노력에 쐐기를 박은 것이 1850년에 탄생한 사진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은밀히 유통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 와 미티스의 <푸른 누드> 가 1907년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예술사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사진이 몰아 넣었던 막다른 길로부터 누드화를 구한"(333쪽) 사건이었다.

그 절정은 십자가의 예수가 어느 만큼 '벗었을까' 하는 점. 오랫동안 간단한 천을 두르고 있던 예수는 16세기 미켈란젤로가 완전 나체의 예수를 그려 일대 물의를 빚은 뒤, '외설과 파렴치함' 사이의 공방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책은 목욕탕의 예를 들어 수치심과 방탕이 동전의 양면이라 한다. 황음 무도한 놀이터였던 로마식 목욕탕, 혼욕이 용인된 중세의 증기 목욕탕 등에 이어, "여성의 수줍음을 손상시키는" 오늘날의 무절제한 광고가 좋은 예다. 오늘날 그것은 "아이의 몸과 시선 속에서 새로운 토양을 발견"(453쪽)했다는 지적이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고전 <성과 풍속의 사회사> 를 버전 업 한 듯, 당대의 그림과 노래 가사 등 책이 제시하는 전거는 풍성하며 논의는 진지하다. 프랑스의 문헌학자이자 중세역사 연구가인 저자가 <결혼의 역사> <사랑과 감정의 역사> 등 묵직한 저서를 잇달아 발표해 온 내공이 전편에 녹아 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