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한번 보자 말만 하다 또 한해 넘기겠다 싶어 다들 모이게 되었죠. 불혹이 되니 작년과는 사뭇 다르게 나이 먹은 티들이 나더라고요. 주름도 늘고 피부색은 거뭇거뭇 퇴색되고 흰머리 늘어 짜증난다고 하소연들을 하더군요.
"얘, 너도 세월은 막지 못하는구나. 넌 평생 나이 안 먹을 줄 알았는데…." 동안이어서 학창시절 어딜 가면 늘 신분증을 요구 받던 저였습니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아직은 괜찮네' 착각하며 살았었는데 친구의 진솔한 말을 들으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는 내 마음을 알아채곤 "네가 그 정돈데 나는 어떻겠니?"하며 한숨을 쉬더군요.
"왜? 무슨 일 있니?" "우리 남편 잘렸어. 당장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하지?" 듣고있던 다른 친구, "요즘 같은 불경기엔 장사도 힘들어. 돈은 적어도 단순노동이 제일이라구. 애당초 가게 같은 거 할 생각은 마." "애들이 걸려서 어디 취직이나 하겠니? 애들 학교는 어떡하구…." "그러게. 그렇다고 몇 시간짜리 알바를 하자니 차비 떼고 밥값 빼면 남는 것도 없어. 몇 푼 벌자고 애들 방치할 순 없잖아." "그래, 어떻게 보면 애들 잘 키우는 게 돈 버는 거야. 그런데 그것도 돈 없이 되디?"
누구 하나 집에서 맘 편히 노는 친구가 없었어요. 저 역시도 직장 그만두곤 동네마트에서 알바를 하고있는데 월급을 받을 때면 괜히 미안해집니다. 대형마트에 밀려 동네마트는 간신히 자리보전이나 하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그만둔다고 할 수는 없어요. 또 일자리를 얻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도 결혼해서 집에서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네요.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늘 돈벌이를 해왔는데도 형편이 크게 나아지는 것도 없이 그저 나이만 먹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스컴에선 국제중이 어떻고, 특목고가 어떻고 해도 우리 모임에선 누구도 그런걸 화제에 올리는 친구가 없습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니 딴 세상 이야기인 거죠. 우리 학창시절엔 다들 이렇게 살 거란 생각 안 했겠죠? '그때 꿈꾸었던 것 반의 반이라도 이루어졌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디서부터 그 꿈들이 갈라졌을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에 진학한 친구, 결혼한 친구, 취직한 친구…. 그때부터 우리는 각자 다른 생활을 하게 됐고 그 후 20년이 지나 다시 비슷한 꿈으로 모였어요. 육신이 멀쩡할 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거죠. 10대에 나 자신을 위한 꿈을 키웠다면 40대엔 가족을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요.
앞으로 20년 각자 열심히 살다가 다시 만나면 그땐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래,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았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를, 그래서 흰머리를 부끄러워 않고 온화한 웃음을 보일 수 있는 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화이팅!
인천시 남구 용현동 -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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