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회사 전무인 C(53.서울 송파구 방이동)씨의 연봉은 1억1,000만원이다. 시가 22억원 짜리 자가아파트와 자동차 2대를 보유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 상류층 가장이다. 그러나 조씨는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부터는 사교육비를 대느라 생활이 넉넉치 않다”며 “가까운 친구들도 비슷한 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쪼들린다는 얘기다.
그는 월 수입의 절반이 넘는 600만원을 세 자녀 사교육비에 쏟아붓고 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고3 아들(18)과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3 딸(15), 벌써부터 외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1 아들(13)의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이다. 큰아들은 수학 개인과외와 사회탐구 일부 과목 학원 수강에 월 300만원을 쓰고, 딸도 1주일에 2차례 수학 개인과외에 월 200만원을 쓴다. 막내 아들은 영어와 수학 학원비로 월 10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참 과장 A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6,000만원대의 연봉을 받지만 3분의 1은 고3 딸이 다니는 학원 몫이다. 수능과 내신에 대비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전문학원에 딸을 보내고 있는데, 한달에 200여만원을 사용한다. A과장은 “수능 한달 전에는 특정 과목 1차례 수강에 100만원이 넘는 ‘족집게 과외’를 시키자고 아내가 조른다”며 “자식의 진로가 걸린 문제여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불경기 무색한 사교육비 지출
경기 악화가 계속되면서 각 가정의 소비지출은 격감 추세지만, 사교육비 만큼은 ‘무풍지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식비 의료비 등 다른 부분은 줄일지언정 자녀 교육비는 아끼지 않겠다”는 학부모들의 사교육 열풍은 식지 않는 분위기다.
단적인 지표가 한국은행이 7일 내놓은 상반기 국민소득 통계다. 올 상반기 중 우리나라 가정에서 지출한 교육비(사교육비+공교육비)는 총 15조33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3조7,772억원에 비해 9.1% 늘어난 규모다. 주목할 점은 전체 가계소비지출(국내 기준) 243조9,885억원 가운데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작년 같은 기간 6.1%에 비해 수치상으로는 0.1% 포인트 늘어난 것이지만, 경기 상황이 호조건(2007년 상반기)과 악조건(2008년 상반기)으로 극명하게 갈린 시기임을 고려하면, 올해 교육비 지출 증가세는 비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경기가 바닥 수준인데도 전체 교육비의 40%가 넘는 사교육비가 늘어났다는 것은 경기 여건이 교육비 지출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해석의 폭을 좀 더 넓히면 자녀교육과 경기 불황은 무관하거나, 오히려 반비례하는 측면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새 교육제도 영향 커
교육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과 ‘찬바람 경기’를 무색케하는 사교육비 지출이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제중 신설, 기숙형 공립고 등 다양한 유형의 고교 설립, 고교 학교선택권제 도입, 초등1학년 영어수업 등 자율과 경쟁 위주의 주요 정책들이 잇따라 선을 보이면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에 대비한 별도의 사교육을 좆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서울대 교육학과의 한 교수는 “새로운 교육제도가 등장할수록 사교육은 번창하고, 가정의 사교육비 지출은 늘게되는 법”이라며 “하지만 경기침체 장기화 속의 사교육비 지출 증가가 가져올 부작용도 간단히 넘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불황일수록 교육비 지출 양극화는 되레 심화할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분기 가계소비지출 자료에 따르면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가구는 사교육비 지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2% 늘어난 데 비해 최저소득층인 1분위 가구는 12.5% 줄었을 정도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김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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